不平則鳴

거기 더하여

*garden 2011. 5. 11. 16:43




스무 살도 채 안된 분이가 만득이를 따라간다. 오동통한 볼살을 지우지도 못하고. 골골거리는 분이 아버지에게 진절머리 난 분이 엄마. 떡메를 들어도 오지게 내려치는 만덕이한테 진작 눈길을 주었다. 심성도 저만 함 됐어. 붙여 놓으면 밥은 굶기지 않을거라는 바람에서였지. 정분든 듯 기댄 소나무 두 그루가 점지된 언덕배기로 오르는 꼬불꼬불한 오솔길에서 분이는 옷보따리를 고쳐 이며 스무 번도 더 돌아보았다. 눈물 때문에 엉거주춤 돌아보는 마을이 부옇게 떠있다.
만득이야 어찌 저리 혼자만 앞서 갈까. 쫓기도 벅차다. 산등성이라 여긴 바람이 세다. 이건 별 일 아니야. 세상에나, 세상이 저기 뿐인 줄 알았는데 이 길 너머 또 다른 세상이 있다니. 앞날에 대한 기대야 섣부르고, 하마나 돌아올 수 있을런지. 부대낀 저 곳에 엄니랑 아부지하고 동생들이 죄다 있는데.
동구나무 아래서 무명 치맛자락에 콧물을 찍어내던 엄니는 어여 가라고 콩밭 새 쫓듯 팔을 내두를 뿐이었다.
만덕이만 파악 믿고 다시는 여게 돌아오지 말라는데 그게 뭔 말이람.


길은 선이다. 점과 점을 잇는 선분. 강릉에서 서울로 오고, 제천에서 전주로 닿는 선. 출발선에서부터 도착점만을 떠올리며 달려나갔다. 습관이 되어 길에 나서면 어떻게 해야 더 빨리, 걸리적거림 없이 목적지에 가 닿을까만을 염두에 둔다. 은근히 가속하는 나를 보고 옆에서 핀잔을 주기도 한다. 어느 때엔 해와 함께 길을 간다. 머리 위에서 따르던 해가 앞서기 시작한다. 지평선 너머로 벋은 선을 따라 지는 해가 장관이다. 과연 얼마나 빨리 달려야 해가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 아니면 여기 차를 세우고 관망해야 할까. 밤이 오는 모습은 어떨까.
나이가 들어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길은 선이 아니라 점과 점이라고.


천만년 그대로일 것 같던 시골은 변하긴 했을까. 친인척들마저 하나둘 빠져나온 다음에는 도무지 가볼 수 없었다. 진주할머니 윗대에서 쌓아올렸다는 돌담 너머 옹기종기 웅크린 마을과 논밭들, 담장 귀퉁이에 으레 자리한 거무튀튀한 감나무 등걸을 떠올리자 뒹굴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바람이 몰고 온 장작 태우는 냄새에, 냇물에 자기 그림자를 비추며 연초록 이파리를 부풀리는 버드나무를 보며, 눈부신 햇살을 피해 들른 오후의 커피점에서도 마음 한곳이 간질거린다. 그리움이란 이런 건가. 도무지 짬을 낼 수 없었는데 근방을 지날 일이 생겼다. 이참에 들러봐야지. 향방을 정하는 순간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고 애를 썼다.
허나 몇십 년만에 찾은 곳은 낯설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내 기억창고에서 수시로 꺼내던 정겨운 얼굴이나 정담은 온데간데 없다. 어느 정도 감수했지만 이건 아니다. 먼 아재뻘을 만나도 서먹서먹하다. 인사치레를 마치자 머쓱하다. 상상을 불러일으키던 서까래를 대신한 양옥 천장이야말로 밋밋하다. 저기쯤 우물이 있고 건너편에 외양간이 있지 않았을까. 자신이 없다. 산이 저절로 움직일 리야 없는데, 사방을 가리던 높다란 안산과 뒷산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그 많은 조상 묘를 어디에 옮겼나. 혼란스러워 여기가 오래 전 그곳인지조차 가늠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 집과 별반 다름없이 커다란 냉장고에 김치 냉장고까지 갖춘 부엌이 딸린, 커다란 티브이에서 똑같은 프로를 시청하는 아이들을 보며 어지럼증을 느끼다가 차츰 홀가분해졌다. 누군가 나를 기억하며 애면글면 그린다고 틈만 나면 생각한 건 왜인지. 짝사랑하는 총각처럼 마음졸인 내가 우스워졌다. 핑게를 대며 성큼 일어선다. 문득 분이가 떠올랐다.


차를 타는 일보다 걷는 일이 잦다. 일부러 먼 곳까지 쫓아가 걷는 때도 있다. 익숙한 것을 만나거나 헤어지기도 한다. 낯선 것도 냉큼 받아들이게 되었다. 스쳐 지나던 것에 머물러 골똘히 바라보기도 한다. 다가올 날을 안달할 필요야 없지.
우직한 만득이가 내쳐 쫓아간 도회지는 난삽해서 종잡을 수 없다. 부딪치는 일마다 신통치 않다. 식구 하나 건사하기가 이리 힘들어서야. 오히려 여자들은 교활한 건지, 의외로 적응을 잘한다. 술에 절어 만득이가 비틀거리는 대신 분이는 눈에 생기를 더해 반짝거렸다. 처음에야 순순하더니만 억척기가 배자 남정네가 우스운지, 그게 밉다. 이 오라질 년, 시방 내가 안되는 게 그렇게 좋아! 핏발 선 눈으로 노려 본다.
착한 분이가 억눌릴지라도 만득이에게 고분고분하여 내내 잘살 줄 알았지.
주섬주섬 들은 소문을 꺼내며, 말끝에 아재는 자기도 마지못해 산다며 어색한 너털웃음을 짓는다. 세월 속에서 변하는 건 산천만이 아니었다. 너도나도 온전치 못하다. 지난 일을 되살리면 아름답기만 한데 왜 함께 사는 식구들은 아웅다웅하는 걸 견디지 못할까. 취미나 버릇, 좋아하는 것이 같다고 생각하는 착각. 상대 얼굴에 내 모습이 들어 있다고 여기는 오류. 그래서 말이 통한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어서 느끼는 절망. 소통이란 때로 착각에서 비롯되는 건 아니었을까. 나라고 해서 다를까. 내세워서 좋을 것도 없건만 왠간해서는 오만한 고집을 꺾지 않는다. 여기서 저기까지 가면 된다고 여겼지. 그 사이사이 만 가지 일이 교차하는 것에 대해 눈을 감고 있으니.











Robin Spielberg, Walk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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