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버려야 한다면

*garden 2011. 5. 20. 15:55




배웅할 채비도 안했는데 사그라진 봄이 아쉽다. 때 아니게 한낮 기온이 섭씨 삼십 도를 오르내린다.
벌써 여름이에요.
가녀린 팔다리를 다 내놓고 다니던 우리 아이가 마주치자 변명을 한다. 아닌 게 아니라 비도 잦아 우기처럼 연일 텁텁하다. 무던함으로 견딘다고 여겼는데 그게 아닌가. 환기가 어려운 사무실 특성상 냉난방이 안되는 이 즈음이 견디기 힘들다. 기분이라도 전환시킬 겸 여름 양복으로 갈아입어야지. 찾아 놓으라고 말할 참이었는데 며칠째 눈만 뜨면 없는 사람을 대신하여 손수 옷장을 뒤진다. 헌데 마땅히 있을 곳을 샅샅이 떠들어봐도 안보인다. 옷이 저절로 없어질 리가 있나. 집 앞 백화점을 돌아나오는 나를 붙잡고 빡빡한 살이를 하소연하던 사람을 떠올렸다. 늦은 시각에도 매장을 지키고 있던 부부는 공손했다. 장삿속이라도 비쳤다면 외면했을 것을, 선량한 이들이어서 건성으로 관심을 둔다. 진열된 양복들을 찬찬히 본다. 몇 해 동안 해진 양복을 걸치고 다녔는데 이참에 새로 개비해 볼까. 혼자 옷을 사 간 적이 없지만 집에서도 이해하지 않을까. 그런데 양복을 걸치는 순간 이제까지 입던 깔깔하며 추레한 감촉이 아니다. 압착한 천이 소위 날개옷처럼 부드럽고 가볍다. 비싸기야 하지만 이만하면 됐어. 색상을 달리하여 두 벌이나 챙기자 부부가 감지덕지한다. 옷이 만족스러우면 그만이지. 눈 감고 한 계절이나 채 입었을까, 그 양복이 안보인다. 더구나 즐겨 입던 색상의 옷이 없으니. 일찍 귀가했다. 옷의 행방을 캐물어도 묵묵부답이다. 숫제 그런 옷이 있었기나 했냐는 듯 의뭉스런 눈초리이다.


지난 겨울 무렵에도 그랬다. 마음을 다잡기도 전에 맹추위가 닥쳤다. 으레 한 며칠 춥다가 풀리기도 하여 옷을 제꺼덕 바꿔 입을 요량이 없었는데, 웬걸 날마다 춥다. 정신이 없을 지경이어서 움츠러들기만 한다. 부랴부랴 겨울 옷을 찾는데 없다. 더구나 코트까지 안보여 난감하다. 이옷저옷을 살펴봐도 마땅치 않다.
세탁소에서 안찾아온 것 아니오?
확인했는데 그도 아니고. 계절을 몇 번이나 건너 뛰었으니 기억도 감감하다. 찬바람 휘휘 도는 거리를 단벌로 종종걸음치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그렇게 열흘 이상 버텼다. 뻔한 옷을 찾을 수 없다니. 화 낼 수도 없어 넘어갔는데 그게 되풀이되고 있다. 사실 옷이나 많다면 그럴 수도 있겠거니 하지만, 선호하는 옷이 분명하니 늘상 입던 옷만을 찾기 일쑤인데 못찾는다면 듣는 누구라도 웃을 일이다.
가만히 아내를 건네봤다. 무심한 듯 이리저리 마주치지 않으려는 눈을 보며 불현듯 깨달았다. 아아, 이런 것이었나. 가슴이 두근거린다. 고집으로 버텨온 내 세월에 진절머리치는 건 아닌가. 동료나 거래처 사람과 혹은 집필자 들과 웃으며 의견을 교환할 적에 아내는 햇살을 커튼으로 막고 끙끙거리지나 않았을까. 동화 속 공주처럼 지난 일을 늘어놓고 혼자 묻고 답하지나 않았을까. 내옷을 펼쳐놓고서는 밟고 찢고 자르며 화풀이나 하지 않았을까. 과연 그랬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견딜 수 없는 세월. 마음을 갉아먹는 병이라도 핑게대며 언필칭 사나운 욕지거리를 주절주절 뱉어 스스로를 위로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라도 내 허물이 버려져 온전해질 수 있다면 다행이련만.













정용국(Violin>, 떠난 날을 위한 엘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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