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구월 조각

*garden 2011. 9. 20. 15:37




바람이 비를 품은 건지, 비가 바람을 몰아붙이는 건지 분간하기 어렵지만 바람과 비에 휘둘리는 숲. 이건 아니다. 인제 생기를 지워야 할 때가 아닌가. 비를 피한 나는 비로소 큰 세상을 올려다 본다. 아름드리 나무 아래서 전전긍긍하면서. '후드득'거리는 비가 섬유질로 채운 나뭇잎을 두들기는 바람에 도무지 마음을 놓을 수 있어야지. 그래도 다행스러운 건 난폭한 손길에도 맡긴 채 거침없이 흔들리는 세상. 천성이 너그러워 순응하며 살아온 다스림이 차츰 전이된다. 엇갈리고 뒤범벅인 곳에 가여운 실 하나가 나타났다. 실은 꼬였다가 풀리기를 반복한다. 범부채나비 한 마리가 숲을 헤집는다. 우중 술이 떨어져 후줄그레한 꽃이라도 찾을 수 있다면 그나마 구원줄이겠구만. 삶이란 저리도 악착같은 것이었구나!


볼일이 있어 나왔다가 이르게 귀가했다. 평일 오후 무렵의 내가 사는 곳은 왜 이리 낯선가. 현관문에서 기척을 내본다. 반겨줄 누군가 있을까 싶어서. 빈집이 썩 내키지 않아 괜히 어깨를 추스른다. 구두를 벗으려다 말고 깜짝 놀랐다. 때마침 울리는 인터폰 소리에 누군가에게 몰래 하던 행동을 들킨 것만 같아 머쓱하다. 주섬주섬 받은 순간 다짜고짜 쫓아나오는 메마른 여자 음성.
"좀 조용히 해 주실 수 없나요?"
"네?"
"시끄러워 살 수가 없네요. 집에 편찮으신 어른도 계신데....."
"아, 네에~."
귀를 기울이자 과연, 어디선가 벽을 울리는 둔탁한 소리가 불규칙적으로 들린다. 이게 어디서 나는 걸까. 숨을 고른다. 무어라 대꾸하기도 전에 '철꺽' 끊어버리는 상대. 신경질적인 음성이 귀에 쟁쟁하여 어이 없다. 소음의 출처를 따라가 보려다가는 이내 포기했다. 그나저나 이 여자는 가끔 이렇게 무례한 인터폰을 하더만. 오르내리며 마주치는 아파트 동 내의 여자들을 떠올린다. 바로 아래층의 상냥한 아주머니가 그럴 리는 없는데 말야. 마음이 어수선해졌다. 냉장고 안에서 캔맥주를 하나 꺼낸다. 냉기가 손가락을 타고 올라 명치께를 꼭꼭 찔렀다. 땄다가는 이내 후회한다. 이가 시려 마실 수 없다.


시끌벅쩍한 시장 바닥을 헤매다 말고 한참 서 있었다. 흥정하는 소리, 물건을 담은 상자를 끄는 소리, 두런거리는 좌담들, 호객하는 소리가 뒤섞여 흘러다닌다. 조촐한 꽃 가게가 있는가 하면 과일을 늘어 둔 점빵도 몇 있고, 비릿한 냄새가 진동하는 생선 가게도 저만큼 보인다. 바로 앞 좌판에서 담배 연기를 호기롭게 내뿜는 할머니. 살아온 세월이 만만치 않았는데 말야. 한줌 연기로 사그라든 지난 날이 애닯다. 양지가 있는가 하면 음지도 있다. 사람이 드문 뒷길로 접어들자 같은 시장 안이어도 딴판으로 적막강산이다. 슬쩍 들여다 본 옷 가게 대청에서 단잠에 빠진 할머니가 낯설지 않다. 여기가 어딘가. 갸웃거리며 기억을 더듬는다. 내게 하두 익숙한 정경이어서 쉽사리 발을 떼지 못하고는 내내 눈길을 준다.














Yanni, In The Morning 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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