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여전한 그때

*garden 2011. 9. 15. 15:40





눈을 떠도 미처 돌아오지 못하는 정신. 밤새 늘어뜨린 육신이 버겁다. 이렇게 새 날을 맞을 수야 있나. 아침은 머리맡에서 서성이고 지난 밤은 하체께에 웅크리고 있었다. 감감한 어둠 쪽에 둔 발을 꼼지락거린다. 몸을 일으키려다가는 포기했다. 내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맞는 아침도 이랬을까. 아직은 뒤죽박죽인 머릿속. 혼재된 지난 시간과 현 시각을 어떻게 구분했을까. 시간이라는 배가 뒤뚱거리는 물살에 내몰려 사정없이 나를 나른다. 벼락같이 찾아온 아침이 얼떨떨하다.
시간 구분을 하기 시작한 건 농사와 밀접하다. 가뭄이나 홍수가 일어나는 시기를 정확히 예측해야 농사짓기가 수월했다. 고대인들은 해와 달과 별의 움직임을 관찰하여 달력을 만들었다. 고대 이집트 학자들은 낮과 밤을 구분하는 법을 연구하였다. 더러 경계가 모호하다. 여름과 겨울의 낮과 밤 길이가 각기 달랐다. 그래서 해의 위치를 기준으로 삼았다. 이에 따라 하루를 잘게 쪼개었다.
중세의 수도사들은 대체로 생활에 엄격했다. 어느 때 기도하고, 언제 얼마 동안 식사를 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규약을 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허나 시간이라는 막연한 개념에 어떻게 칸을 내지를 것인가, 손 안에 든 모래알처럼 형체가 만들어지지 않는 것을 어떻게 갈무리해야 할지에 대해 판단이 어려웠다. 곧 톱니바퀴와 추를 이용한 기계시계가 만들어졌다. 하나 뿐인 시계바늘이 톱니바퀴에 연결되어 원을 그리며 움직이는 게 고작이었다. 부정확하기도 했다. 이는 톱니바퀴를 정확하게 만들 수 없기 때문이었다. 허나 이전 물시계나 해시계에 비하면 어느 정도의 제약마저 해소시킨, 상당히 진일보한 물건이었다. 많은 이가 연구하여 차츰 시계가 발전했다. 또한, 시간을 구분하고 사람들은 이에 맞춰 일과를 조정할 수 있게 되었다. 교회 종탑에서 울리는 종 소리를 헤아리며 일을 해야 할 때와 마쳐야 할 때를 가늠하기도 했다. 행동에 따른 결과를 파악하여 그 가치를 따지게도 되었다.
빅벤The Great Bell은 영국 국회의사당 동쪽 끝에 세워진 시계탑이다. 간혹 대형 탑에 달린 4면 시계를 가리키기도 하고, 내부의 거대한 종에 대한 별칭이기도 하며, 이를 통틀어 부르기도 하는 빅벤은 시간마다 울리는 종 소리로 유명하다. 무엇보다 시각이 정확하여 런던 시민은 물론 런던을 방문하는 관광객들도 빅벤 종 소리에 시계를 맞출 정도이다.

아버지는 홀로 근 십년 가까이 버텼다. 생에 대한 애착보다 목전에 둔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어쩔 수 없다. 허나 삶은 더 이상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않았다. 스스로에게 씌우고 갇힌 고독을 가서 뵐 때마다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당신이 눈을 감았을 때 비로소 우리는 날숨을 크게 내쉬었다. 한 시대에 금이 그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가위 즈음, 당신이 누운 자리에서 하룻밤을 지새웠다. 내가 조그만 아이였을 적에 어머니가 작정하고 장만한 괘종시계가 밤새 똑딱거리다가는 뎅뎅거리며 매 시각을 알렸다. 금을 그어도 도무지 가둘 수 없는 시간 속에서 왜 나는 헤어나지 못하는 걸까.











George Skaroulis, Gene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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