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가을속

*garden 2011. 9. 7. 08:55




사랑을 잃은 이는 한 사흘 울고 싶고. 추억에 목마른 이는 지치도록 걸으려고 한다. 새 날이 그리운 이는 어디로 가야 하나. 저기 숲 그늘에서 마음을 달래는 이는 또 누구인가.
까닭 없이 나는 온종일 헤매기 위해 산으로 향했다. 알리바바처럼 동굴 안에서 보물을 잔뜩 챙겨 올 건 아니지만 주문을 잊지 말아야지. 하늘까지 닿은 방책 앞에서 소리칠까. '열려라 참깨!' 하고.
늦더위가 활개 친다. 한 움큼씩 내리쬐는 따가운 햇살. 그래도 괜찮다, 아무렴. 여름 내 비에 잠겨 빈 쭉정이만으로 견딘 곡식도 이제 여물어야지. 머리카락을 날리는 바람. 잔칫날 곱게 차려입은 할머니의 옥빛 저고리를 닮은 하늘. 수시로 변하는 구름. 실눈 뜨고 봐도 묵직한 산이 저기구나. 애잔한 숲과 잘 어울린 첩첩 산중에서 맞는 구월은 어제와 완연히 다른 날이다.

바람도 길이 있다. 골을 타고 오른 바람이 머무는 산 마루금에서 깊은 숨을 쉬었다. 온몸으로 받아들인 바람으로 속을 부풀린다. 조만간 둥실둥실 떠올라야지. 이런 날, 숲길을 걸으며 혀 짧은 소리로 노래하는 듯한 에디뜨 삐아프의 샹송이라도 흥얼거리면 어떨까. 오밀조밀 모인 사람들이 서성인다. 산 너머 산을 겨우 넘었다. 내색 없어도 조바심을 품은 표정들. 벗어나고픈 구속과 굴레의 관을 아직 머리에 드리운 탓이다. 스왑스왑스왑...숲에서 나는 날카로운 소리의 주인공은 매미인가, 벌레인가, 아니면 새인가. 귀를 기울였다. 발바닥에 맞닿은 흙의 촉감이 좋다. 실핏줄이 조심스레 벋어 땅 속으로 들어간다. 비로소 나무처럼 뿌리 내려 든든한 기분이다. 어느새 한 계절을 보냈는가. 와글와글 몰려드는 가을. 이렇게 서서 어둠 속에 꿈결처럼 뜨는 별을 보면 정작으로 새닢마저 일궈낼 수 있을까.
우툴두툴한 고목 껍질에 두서없이 모여 있는 말벌 몇 마리를 발견했다. 며칠 전 말벌에 쏘여 죽은 사람의 뉴스도 있었다. 주의를 주자 몇몇은 펄쩍 뛰어 피하고, 철없는 한 여자는 말려도 부득부득 다가간다. 또, 누군가는 등산스틱으로 꾹꾹 찍어보려고 한다. 대담하게 서 피하지도 않는 이에게 옆에서 주의를 주자 시큰둥하게 내뱉는다. '벌이 내겐 달려들지 않으니 걱정마세요.' 일러 준 이가 입맛을 다신다. 천만이 넘게 사는 거대도시에서 산 경계를 넘어오는 이야 부지기수. 개중엔 별의 별 이가 다 있으니 그런가 보다 해야겠지.

실금처럼 숲 사이로 파고들며 끊어졌다 이어지는 길. 어디서 엇딛었는지 한쪽 발목이 시큰하다. 그래도 오른 만큼 보이는 세상. 너도나도 꾸역꾸역 올랐다. 저기가 내가 살던 곳인가. 우리 사는 세상은, 차암 가깝고도 멀기만 하다. 곳곳에 구역을 쳐두었다. 서로 빼앗고 빼앗기지 않으려는 빡빡한 몸짓이 드러난다. 선연히 피흘리던 기억에 몸서리친다. 울고 웃으며 지난 세월이 무심하다. 왜 그리 악을 쓰며 발버둥쳤을까. 산처럼 침묵하지 못하고, 기꺼이 손내밀어 감싸안지 못하는 우리가 애닯다.




































Karunesh, A Journey Of The H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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