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그렇구나

*garden 2011. 10. 7. 15:45




억센 손아귀에서 쥐어짠 빨래 같은 햇살, 열기를 잃고 휘청댄다. 그 아래 꼼지락대는 풀잎. 스러지는 것에 대한 애잔함은 동일시 때문인가.
청명한 날이 이어진다. 시를 읊기보다는 노래를 부르고 싶은 오후. 기분 탓이다, 노랫가락을 떠올리다가는 하마트면 남일해의 차분한 저음이 잘 어울리던 대중가요 '빨간구두 아가씨'를 휘파람으로 불 뻔했다. 후유, 우쭐한 게 탈이야. 억지자리가 마련되어 노래라도 부른다면 레퍼토리로 꺼내기도 하는데 매번 맛이 안난다. 사분의 사박자에 스윙풍의 멜로디를 살려, 구두를 신고 또각또각 걸어가는 젊은 아가씨를 보고 있는 것처럼 불러야 하는데 말야. 노래가 히트 칠 적엔 서울시내 제화점마다 빨간구두가 동이 났다고 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화의 모티브가 되기도 하는 빨간구두. 우선 강렬한 색상이 눈길을 끈다. 거기 더하여 드높은 구두소리를 줄기차게 내면서 걷는다면? 앞자리 동료를 슬쩍 본다. 늘 글줄에 시선을 박고 있지만 도도함이나 거침없음, 자기 일 외의 것에 대한 무관심 등 요즘 세대다운 요소를 빠뜨리지 않고 가지고 있다. 이름을 부르면 동그랗게 뜨는 눈이 아름답지만 쉽사리 정이 가지 않는다. 출근할 적 이야기인데, 현관에서부터 구두소리를 끌고 온다. 이전에 소음에 대해 거부감을 감추지 않던 선배 덕분인지, 늘 가라앉은 사무실에서 이건 도발적이다. 사람들이 귀를 쫑긋한다. 드디어 구두소리가 딱 그쳤다. 앉기 전 보내는 한결같은 공손한 인사.
아, 현관에 들어서는 순간 지선씨인 줄 알았어요.
팽팽하던 분위기가 풀리는 것을 느낀다. 순식간에 푸근한 웃음이 물결처럼 흐른다. 다들 내심으로 호통이 떨어지기를 바란 건가. 그러고 보니 이도 선입견이다. 늘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도 아니다. 때를 가려야지. 소음보다 가을 저수지에 들이찬 물처럼 잔잔한 고요를 즐기는 건 사람들이 이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새삼 주변을 둘러보았다. 묵언수행을 바라는 건 아니겠지. 나만은 의미 없는 말이라도 늘어 놓아야지. 단정하고 거기에 앞서 엮인 씨줄, 날줄 들. 우리를 이렇게 머물게끔 지탱해 주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한때 바다였던 곳. 바깥을 막아 간척을 했는데, 진작 솟은 둔덕에서 공룡알이 무더기로 발견되었다는 송산벌. 바람소리가 소떼 울음처럼 몰려다닌다고 했다. 옛적 코리아케라톱스라는 뿔공룡이 어슬렁거리기도 했을, 그러고도 유구한 세월이 흘러 또 다른 꿈을 꾸는 자가 타인의 삶을 도륙내기도 했다. 그리고 연쇄살인 사건에 대한 공포로 술렁거릴 즈음 갈대밭에서 백골 시신이 발견되어 새삼 경악하게 만들기도 했었다. 때로는 을씨년스러움도 우리에겐 약이다. 이런저런 도시의 소음이나 휘황한 불빛을 떠나와 지는 해를 마주하고 섰다. 소금기에 절은 바람은 어디 있나? 틈만 나면 주문을 왼 탓인지 만만해진 세상일. 오늘 변방에서 내려다보는 이 별의 지난 시간과 흐름, 거기 머물렀을 누군가의 몸짓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을 어떤 연유를 알 것만 같은 시각이다.












Afshin Toufighian, Prayer Of Change, e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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