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가을 어귀

*garden 2011. 10. 19. 14:41




꼭 참석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떫떠름한 자리가 있는가 하면 콧노래가 날만큼 신명나는 자리도 있다.
서둘러 쫓아가고, 헐레벌떡 지하철로 이동한 다음 노선버스로 갈아타고서 흔들리며 달려가는 과정을, 누가 시킨다면 과연 군말 없이 해낼까. 챙겨 다니는 장비가 만만찮아 배낭이 유난히 무거워도 내색 않고 약속 자리에 나갔다. 북한산 백운대로 오르는 밤골 산행 들머리. 들고나는 산행객을 위해, 아니 생계가 달린 일이라 이른 시각부터 열어 둔 가게들이 보인다. 어수선해도 옆길로 접어들기만 하면 금방 향기로운 숲 세상이었는데, 둘레길을 만드느라 주변을 개발하여 부쩍 많은 사람이 시도 때도 없이 들끓는다. 참아야지. 길을 독차지하고 투덜거릴 수야 없다. 바람이라면, 자연 속에서 숨쉬고 느끼며 동화하여 호젓해질 수 있다면 오죽 좋을까나. 하두 다녀 안보고도 길의 전편을 꿰어 내 소관은 아니지만 사람들과의 일정을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궁리한다. 모처럼 보는 얼굴들이니 쉬이 넘길 수야 없다. 서울 시내에서야 단풍이 아직 이르지만 여기는 산중, 한곳에 붉은 반점이라도 생기기만 하면 퍼지기는 시간 문제이다. 저희끼리 물들고 물들이며 순식간에 닮아가다가는 이내 조락의 기미를 보이기도 한다. 입구에서부터 메마르며 부썩부썩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바짝 마른 계곡을 보며 하릴 없이 서 있었다. 어느 해인가 산밤을 주워 주머니를 채우던 기억을 떠올린다. 조막만해도, 쫀득하니 씹을수록 감도는 단맛이 일품이었는데.

걸음을 떼는 중에 내리누르는 등짐 하중을 조절한다. 여분의 옷이나 우의 등을 챙겼던가. 건망증으로, 줄곧 떠올리다가도 깜박 빠뜨리는 때가 제법 있다. 미처 산등성이로 접어들기 전에 빗방울이 듣는다. 손바닥을 내밀었다. 바위 여기저기에 맞부딪는 물기의 흔적, 굵다. 우리에게야 길을 막는 훼방꾼이지만 그나마 지속된 가뭄을 해소하는 단비이다. 웬만해선 산행을 지속하려는 입장이지만 심상치 않아 하산을 권유한다. 머리 위 우레 소리가 잦다. 오도가도 못하고 망설이는 일행을 다독인다. 진작 계획한 산행을 접으려니 허무할게다. 그래도 하는 수 없다.

가을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억장 무너진 자리에 고인 견딜 수 없는 슬픔. 사막에서 신기루를 쫓는 대상같은 행렬을 지나쳤다. 모딜리아니의 장밋빛 누드처럼 긴 목선에 촛점 없는 눈동자의 가을. 너는 또 어디로 가고 있는가. 껴안아 딩굴 새도 없이 줄달음질쳐 자취를 감추는구나. 쿰쿰한 겨울 울음 소리를 낼 수밖에 없는 나를 못이기는 체 달래주지 않으려나.











Eric Tingstad & Nancy Rumbel, Deep In My S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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