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의 시간을 왜 고행이라 여길까. 이는 산을 낯설게 받아들이는 탓이다. 어둠이 가시기도 전에 산을 내려왔다. 이것저것 소모하면 짐이 덜어지리라 여겼는데, 배낭은 돌덩어리처럼 변해갔다. 사흘 내내 걸어 뻐근한 다리, 씻지 못해 찌부둥한 육신이 거추장스럽다. 새벽 안개가 발목에 휘어감긴다. 어스름에 뭉쳐진, 가솔린 태우는 냄새가 내가 문명사회로 회귀했음을 알려주는 듯했다. '카라랑'대며 몸을 달구고 있는 첫 차를 잡아타고 내친 김에 와 버렸다. 십년 전이나 이십년 전이나 한결같은 어머니. 동트기 전에 일어나 계시다가 오랜만에 나를 보고 두말 없이 아침 상을 차렸다. 씻는 동안 자리에 앉은 식구들. 아침 신문을 밀친 아버지가 상머리에 앉으시며 식사가 시작되었다. 잠이 덜 깬듯 입이 찢어져라 하품 하던 동생이 쫑알거린다. 두런두런 얘기가 오가자 비로소 집에 돌아온 게 실감난다. 새삼 식구들을 돌아본다. 어른이 넌지시 던진다.
"힘들었겠네. 산은 보이더냐?"
"힘이 들어도 오르내릴만 했습니다. 산 속에선 산이 보이지 않았어요."
밥을 한술 머금은 다음 된장국을 조금 떠 입에 댄다. 그러다가 손을 멈췄다. 왜 다들 나만 보는가. 부담스러워 꺼칠한 아래턱을 쓰다듬었다. 새삼스레 핀잔하는 여동생.
"걸신 들린 것도 아니고. 밥만 먹는 오빠 습성은 여전하네."
그때서야 알아차렸다. 다들 두세 숟가락 밖에 뜨지 않았음에도 내앞 밥그릇의 밥만 푹 꺼져 있다. 입을 우물거리며 덧붙였다.
"응, 된장이 짜서."
"몇 번을 말씀 드려도 안돼. 우리 엄마 손이 예전과 달라 점점 반찬이 짜져."
결국 밥을 떠다 말고, 어머니가 된장 그릇을 들고 일어섰다.
"짜면 진작 말하지 그랬냐?"
오"빤 그런 말 못해. 짜면 조금 떠먹고, 싱거워야 제대로 떠먹는 거 몰라?"
다들 그러지 않는가? 참고 사는 일이 일상이며 다반사인 줄 아는데. 순간을 넘기지 못하고 엮는 잡음이나 소동은 질색이다. 때가 되면 바라는 대로 될거야. 그때까지만 참자. 조급증에 누군가는 떠들거다. 그렇게 만들어져 가는 추이를 봐야지. 앞만 보고 내쳐달려 차오르는 숨. 겨를이 없다. 최선을 다하지 않는 때가 없어 여지라고는 둘 수 없다.
점심을 해결하러 종종 들르는 식당. 늘 부지런한 다섯 아줌마가 주방과 홀에서 정신 없이 돌아간다. 기다리는 동안 살펴보는 그네들 표정도 재미있다. 일면 무관심한듯 가장한 무뚝뚝함과 세상을 다 산듯 눙치는 달관의 경지와 부지런함과 억지웃음이 묘하게 얼버무려져 내는 밑반찬의 맛깔스러움이라니. 며칠 전 이변이 일어났다. 점심시간이 끝날 때쯤 더 늙수그레한 아주머니가 들어섰다. 열꽃이 가득한 아이를 업고서. 뒤치닥거리로 바쁜 아주머니들이 반색한다. 뒤질새라 달려가, 겨우 옹알이를 하는 아이에게 입을 맞추거나 이마를 맞대보는 등 이쁜 기색을 감추지 않는다. 조금 전까지 치열한 삶의 도가니이던 식당이 순식간에 꽃이 만발한 화원으로 변했다. 나도 놀랐다. 그리고 감탄하여 고개를 끄덕인다. 오오, 우리 생이란게 이런 거였나. 한 가지 색깔로 마냥 견디는 것이 아니었구나!
웃지 못하고 화도 눌러 참으며 즐거움이나 슬픈 기색 한번 표하지 않고 살아온 세월. 내색없이 걸었다. 저 길 끝에 도사린 회한은 과연 누구 몫인가.
Aschera, Whales Of Atlant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