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떤 날인가. 생의 전환점이 될 기발한 사건이나 일이 예정되어 있는 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거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삼월 삼일이 삼겹살데이라면 구월 구일은 구구데이, 혹은 고백데이라고 한다. 시월 사일은 천사데이이고, 시월 이십사일은 이즈음이 사과가 나는 계절이라 그 동안 잘못한 일이 있다면 둘이서 사과하고 화해하라는 사과데이이다. 십일월 들어 첫 날인 십일월 일일은 한우데이이고, 십일월 십일일은 그 유명한 빼빼로데이이다. 한쪽에선 일본 과자를 흉내낸 초콜릿을 묻힌 길쭉하고 잘 빠진 빼빼로 대신 이참에 우리 떡을 소진하는 날로 만들자며 가래떡데이라 목청을 높이지만, 올해야말로 숫자 일이 주루룩 겹치는 밀레니엄 빼빼로데이라는데 과연 아성을 허물 수 있을지. 어떻거나 매일매일이 특별한 날이 아닌 적 있는가. 내게는 오늘이 무의미하다 해도 어느 누군가에겐 가슴 저릿한 날일 것이며, 내일은 잊지 못할 추억의 날로 아는 이를 챙겨야 할지도 모르고, 또 다음 날은 기억할 일을 무심히 지나치는 바람에 추궁을 당하기도 할 것이다. 사실은 상공인의 날, 농업인의 날, 수출의 날처럼 뜬금없는 기념일보다 더 와 닿는 날처럼 여겨져, 어법에 맞지 않게 갖다 붙여도 다들 기꺼이 동조하는 건 아닐까. 그래서 이를 빌미로라도 날이면 날마다 사람들이 모여 기념하고 웃을 수 있다면 좀 좋을까!
지난 시간에 대해 무덤덤하려고 애쓴다. 혼자이고 싶어 쳐박혀선 꼼짝하지 않기도 하고, 때로는 이런 게 궁상인가 싶어 박차고서는 사람 속에 들었다가 그만 헛헛해지기도 한다. 비 오면 오는 대로 바람 불면 부는 대로 흔들리는 배로 있었으면 하는데도 이를 보고 지나치지 못하는 이들. 강의 이편에 배를 매두었다고 쫓지를 않나, 건너편에 가 있으면 또 그대로 불편하다며 난리법석이다. 대관절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 달이 나름대로 풍성했다면 그에 비해 유난히도 내세울 것 없는 십일월. 너는 과연 누구를 닮았는가. 대체로 이맘때 불어오는 삭막하고 메마른 바람을 떠올렸다. 감히 머물러 있지 않게 하려면 지금이라도 몰아쳐라!
David London, Against The W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