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세상의 아주머니들

*garden 2011. 11. 11. 15:15




이루를 훔치려고 들락날락하는 주자에게 견제구를 대여섯 번이나 던지는 투수. 주자는 두어 번이나 엎어지며 아슬아슬하게 루를 되짚었다. 지루한 신경전으로 아쉬운 탄성이 연신 터지고, 보는 이들 가슴이 타들어간다. 던질 태세를 갖추고서는 포수와 사인을 교환한 투수가 다시 일루로 벼락처럼 공을 던졌다. 팽팽한 투수전에다가 노아웃에 일루에 주자라, 여기서 도루 하나쯤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겼다간 큰코다친다. 주자가 이루에 안착한다면 안타 하나로 점수를 낼 수 있다. 거기다가 내야수비가 흔들리고, 투수도 평정심을 잃을 수 있다. 도루만을 위해 유명 단거리 육상선수를 스카우트 한 적도 있다. 결과야 기대한 만큼 좋지 못했다만서도.
이천구년 베를린 육상선수권대회에서 일백미터를 구초오팔에 뛰어 세계신기록을 세운 우샤인 볼트. 우리나라에 와서 지하철을 탔다. 빈 자리가 나 가 앉으려는 순간 저쪽 문가에 있던 아줌마가 잽싸게 달려와서 먼저 앉았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다소곳함은 진작에 팽개쳤다. 외려 저돌적이라는 말이 어울리고 뻔뻔함과 수다스러움을 떠올리게 만드는 억척의 대명사인 아주머니. 볼일로 지방 소읍에 내려갔다. 길을 가는 중에 앞에 아이와 걷는 작달막한 아주머니가 보인다. 앞지르기가 마땅찮아 보폭을 줄여 한동안 따랐다. 눈길을 주지 않을 수 없는 게, 네모진 짐을 보자기에 싸서는 정수리에 올린 모습이 낯설지 않다. 언젯적 모습인가. 저렇게 짐을 이고 다니는 이를 이제 찾을래야 찾을 수 없다. 머리에 짐을 이기는 커녕 올릴 수도 없을걸. 흔들흔들 걸으며 팔을 홰홰 내두르는 모습, 까딱거리는 머릿짐이라도 여간해서는 떨어질 기미가 없다. 대여섯 살 짜리 꼬마가 애먼짓이라도 하는지 살피며 연신 입으로 지청구를 날리면서. 괜히 웃음이 난다. 모녀간은 아니고 조손간이지 아마. 숱 적은 뽀글머리가 눌려도 상관 않고, 똬리 없이 짐을 얹고 가는 행색이 새삼스럽다. 간간이 지나는 자동차를 따라 길가 수북하던 냑엽이 일어났다가 다시 누웠다.

어디를 가더라도 유난스러운 아주머니들. 모이면 깔깔거리며 목청을 높여 시끌벅쩍하다. 조용한 차 안에서도 거리낌없이 전화기를 열어 아이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밥을 먹었느냐, 학원엘 다녀왔느냐 혹은, 게임에 매달려 있지나 않은지를 주변인들이 다 알도록 떠든다. 그래도 낯 찌푸릴 수 없는 게 사랑스러운 우리네 어머니이며 이모이고, 아내라든지 이웃인 다음에야. 어릴 적 동네에서 마주치던 아주머니들 얼굴을 기억해내려고 애썼지만 쉽지 않았다. 낯 붉히며 언성을 높인 이웃집 아주머니에게 심사가 틀린 어머니는 내게 신신당부를 한다. '그 여편네 골목에서 보더라도 절때 인사하지 말그라이.' 하면서. 다음다음 날 이웃집 아주머니가 상을 당한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달려갔다 온 어머니 눈자위가 붉다. 어린 여동생이 이를 보며 괜히 울먹울먹했는데, 며칠 전 보니 어느새 여동생마저 눈가 주름이 자글자글한 아줌마로 변해 있지 않은가.


















Phil Coulter, The Town I Loved S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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