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욱죄어 진저리치게 만들던 어둠. 꿈에까지 쫓아들어와 뒤섞여 돌아가는 바람에 혼미하다. 오죽하면 끈 떨어진 연처럼 사방팔방 떠다니기만 했을까. 잎을 떨어낸 나무마다 그림자를 드리운 산에서 산으로 건너뛰기도 하고, 우거진 갈대 지켜선 강을 연어처럼 거슬러 오르기도 한다. 허전한 발 아래가 아찔하여 잠결에도 조바심을 쳤다. 그리고 동동거리는 아침 햇살을 느끼며 겨우 눈을 뜬다. 새 날에 새삼스러운 내가 실감나지 않는다. 누운 채 소리를 낸다. 골골거리며 목청이 떨리는 소리가 귀로 전해진다. 우선 바탕 없이 떠도는 정신부터 잡아 가두어야지. 고요한 집 안팎. 나도 견뎌볼까. 정물처럼 미동 없이. 아무리 휴일이어도 그렇지. 곤하게 떨어진 나를 깨우지도 않고 사라져버린 식구들. 아무도 없는 집이라니, 눈 뜨고서는 허겁지겁 쫓아나가게 만드는 그 무엇을 떠올리려고 애썼다. 가을이 끝났던가. 그럼 당연히 겨울이어야지. 예전처럼 면돗날로 살을 에이는 추위가 없는 탓인지 겨울이 겨울답지 않아.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누운 채 벽을 두드린다.
쿵,쿵,쿵,쿵,쿵!
벽으로 둘러싸인 속에 번데기처럼 웅크리고 들어 있을 사람들. 울림 없이 끊어진 방금의 둔탁한 소리를 누가 들었을까. 혼돈과 질척거림으로 걸음이 꼬이기 일쑤이던 지난 밤은 정녕 어디로 사라졌는가. 나를 여기에 머물러 있게끔 만든 건 무엇인가. 다시 벽을 두드렸다. 벽 저편 누군가 내 타전 소리를 들어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Francis Goya, Bilitis(with Richard Clayder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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