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겨울 손

*garden 2011. 12. 27. 14:57




요즘들어 부쩍 말이 없는 아이. 의도적으로 찌게 두지 않으려는 살이 문제이지, 키야 제법 멀쑥하다. 신체만큼 마음도 살지웠으면 하지만 그건 욕심인가. 인제 스스로 알아서 할 때도 되었잖아. 곧추세우던 간섭을 그치자. 그래도 마주치는 부스스한 차림새하며 심각한 표정을 지나치지 못한다.
안좋은 일이라도 있냐?
말을 끊었다. 토닥이기는커녕 습관적으로 꾸짖는 투이니. 표범처럼 늘상 쫓아다니기만 해서 아이까지 그럴 수야 없잖아. 열에 한둘은 자살을 꿈꾸는 사회. 며칠 전 아파트에서 뛰어내린 중학생이 남긴 글을 보며 울먹이던 심정을 꺼내든다. 막다른 골목에서 마주친 식구들에 대한 연민이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까지 감히 떨칠 수 있었던 무상한 비상. 포기인가, 아니면 갈구인가. 당장 내 눈앞을 가로막고 선 벽을 보면 아뜩하다. 싫어도 행해야만 하는 일과 바라지만 선뜻 달려들지 못하는 일 들 사이의 간극은 얼마만큼인가.

한번 꼬이면 온통 헝클어진다. 뜻대로 되지 않아 종일 불같은 상사. 서슬에 다들 눈치만 본다. 일면 불합리한 걸 알지만 눈을 감자. 입을 열려면 전투태세부터 갖추어야 한다. 일의 앞뒤를 바꾸려면 열 배의 논리로 무장해야 한다. 그뿐인가, 첩첩이 재인 사람과 관습 들을 일일이 설득하고 제거하려면 쉽지 않다. 그렇게 해서라도 고집을 꺾을 수 있다면 다행이다만, 때가 때인만큼 넘어가야지. 되짚어보면 작년 이맘때도 그랬지 않나.
전동차를 기다리며 서있었다. 담배냄새에 쩐 낡은 야상을 걸친 앞 사내. 건들거리다가는 전화기를 연다. 처음에는 무뚝뚝하더니 거리낌없는 사투리로 팝콘처럼 튀겨진 말을 한움큼이나 쏟아냈다. 말할 틈도 없이 아픈 귀청에 찡그리는 상대가 보인다. 윽박지르는 통에 듣고 있는 내가 불편하다. 시선을 돌리자 옆에 이어폰을 낀 깡마른 여자아이. 새나오는 무자비한 소음은 달콤하고 빠른 K-pop이건만 눈은 퀭하고 무표정하다. 주변 그 누구도 웃지 않았다.
길이 따로 없는 겨울 계곡을 헤맨다. 바위를 적시는 물길을 보았다. 뼈가 드러나고 살이 발린 앙상한 계절 속을 샅샅이 훑는 손. 어제 내린 눈으로 덮히고 얼음장 속을 통한다고 늘 차가울까. 묵묵히 나아가는 사이에 낡은 날이 끝났다.
볼일로 나간 시내 들뜬 분위기가 낯설어 지레 겉돈다. 관심을 끊고 동면에 든 관계야말로 암담하다. 아암, 그렇게 살 수야 없지. 지나는 길에 앙증한 캐릭터가 수놓인 벙어리장갑이랑 감촉 좋은 겨울 소품 들을 골랐다. 별 것 아니어도 촛불 밝히듯 환해질 아이 얼굴을 떠올렸다. 신선한 새 날을 두드릴 수 있게 남은 길이라도 성큼성큼 걸어야지.














John Aderney, All In A Mo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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