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식량이지 않은가
온몸으로 경단을 굴리는 쇠똥구리처럼 애를 써도 안돼
당신을 보고도
아직 서투른 나는,
겨울 황벽나무 가지를 하릴없이 오르내리는 곤줄박이이다
할말이라도 있어야지
'쓰쓰 삐이삐' 혀를 굴리지 못하는 단발마 가쁜 소리라도 낼 수 있다면
해歲가 바뀌었다
일력日曆에 새 용지를 갈아 낀 다음 지난 해를 폐기하려고 헌 일력지를 뒤적이다가는
휘갈겨 놓은 울음의 흔적보다 여백으로 남긴 날이 더 많다는 것을 알았다
딱딱하기만 한 나무 거죽에라도 뾰족한 부리를 문질러 보던 날의 연속
사실은 비어 있는 날이 채울 게 없어서가 아니었어
정작으로 하고픈 말을 꺼내지 못하고 허구헌 날 맴돌이로 허비해서이지
다행인 건 눈물겨운 날마다 양팔저울 건너편에 올라와 앉는 당신
한낮이면 서대문 영천시장 입구에 나타나던 산발한 여인네
가래 섞인 소리를 끊임없이 늘어놓았다가 헤뜨리는데
모르겠다, 평생의 속울음같은 진혼곡이라고 저걸 쏟아내는지
벗은 누덕옷으로 모래집을 만들고는
땟국물로 덕지덕지한 맨살이 금 가도록 긁었다
오늘 마음 밭에 내려감기는 눈이 살갑다
설원을 지치는 늑대 울음같은 바람소리까지 잠재워서는
허공 중에 떠오르는 말이 만든 수많은 이름들을 되뇌었다.
당신의 말이 자작나무에서 박화수피로 일어난다
동강난 그 늑골이라도 태울 수 있다면
자지러져 스스로 소리내는 이름이
비로소 화촉 밝힌,
깊은 밤
그 눈부신 속살처럼 아늑해지겠는데
Yanni, Adagio In C Min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