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황스럽다. 젊은 생각을 따르거나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느덧 낡고 지난 사고방식만을 고수하는 완고한 아저씨가 되었다. 시대에 순응하지 못하는 건 경박함이 싫은 고집이다. 한편으로는 아전인수격인 판단도 한몫한다. 더러 바뀌더라도 쫓아가면 될텐데 뭐가 걱정인가. 그래도 알게 모르게 혼자만 뒤쳐지는 때도 있다. 시류가 바뀐다고 알아챈 순간 벌써 저만큼 앞서가 버리니 난처하다.
낯선 시골 소읍을 맴돌다가 넌출째 흘러내린 호박과 꽃을 달고 있는 담장 위 징하게 쏟아낸 순을 보았다. 꽃마다 열매로 맺히지야 않겠지만 안타깝다. 옴쭉달싹 못하고 주저앉아 견뎌야 하는 호박이 나의 처지 같아 측은하다. 달려와 안기고 함께 딩굴던 나만의 세상은 이제 과거의 일인 듯하니.
지하보도에서 오르자 맞는 벌건 대낮, 퍼진 열기와 숨막히는 텁텁함으로 견딜 수 없다. 무의식중에 탄식을 했다. 옆에서 오르던 이가 무슨 일인가 하여 쳐다본다. 혼잣말이라고 억지 변명을 할 수도 없고. 햇볕에 얼굴이 익은 여자 아이가 양산을 접으며 허겁지겁 쫓아내려 부딪칠 뻔했다. 안되는 일도 없지만 되는 일도 없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세상 일처럼 차츰 적응이 되리라 여기던 여름인데, 이번에야말로 지독했다. 찐득하게 달라붙어 늘어진 여름. 내내 잠 못이루는 열대야와 찜통더위로 밤낮없이 들끓어 정신을 차릴 수 없다. 강은 녹조로 뒤덮여 상수원이 위협 받는다고 한다. 전력량은 연일 한계치에 다달아 블랙아웃이 염려스러울 정도로 아슬했다. 차라리 여름이 악몽이었으면 하는 이가 많다.
미디어에 잡히는 경제학자나 금융당국자의 표정은 어둡다. 연말 대선을 앞둔 정칫꾼들은 참새가 방앗간을 만난 것처럼 입을 다물지 않았다. 제 잘났다고 떠드는 와중에도 부동산은 가라앉고 자산이 거덜난 서민들은 어려운 생계에 한숨을 쉬었다. 그나마 연일 전해지는 런던 하계올림픽 출전 선수들의 선전으로 사람들은 시름을 달래고 웃음을 지을 뿐이다.
변화가 대세이다. 변화를 받아들여야 살아 남는다. 모든 게 대립하고 통합하며 변할 수밖에 없는 과정. 고대 그리스 철학자이던 헤라클레이토스는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역설로 말하면 '변한다는 진리도 변할 수 있을 터', 과연 우리는 어떤 덕목을 지니고 걸어가야 할까.
오랜만에 숲으로 든다. 깎여 널린 바위 사이로 급하게 쫓아내려오는 물길을 따라 오르는 산길에서 두리번거린다. 나무들이 흔들린다. 시달려도 너무 오래 시달렸다. 나를 지키기 위함인가, 아니면 사는 길을 찾아가기 위함인가. 고달픈 육신이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정신이라도 이완시킬 수 있는 바람 한줄기를 찾아야지. 꼬물거리며 눈앞에 버틴 여름벌레. 인기척을 감지하고도 피하지 않는 녀석이 징그럽다. 참을 수 없어. 달려들어 푸른 물이 뚝뚝 듣도록 물어뜯었다.
Bandari, The Green Glens of Antr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