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에 서식하는 산양. 개체수가 줄어들어 보호종으로 지정하고 있다. 초식동물이 가지는 순한 품성에 반하여 절벽타기의 명수이다. 왜 그리 위험한 곳에 오를까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이상을 신봉하는가, 아니면 생각이 없어서인지. 겨우 바위 벽에 붙은 이끼를 뜯어먹기 위해서라는데, 이는 생존을 위한 것이므로 감히 무어라 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도 직립절벽에서 부조처럼 네 발로 버틴 모습이 자못 경이롭다. 몸조차 가누기 힘든 위태위태한 절벽에서 까마득한 아래를 곁눈질하며 넘어뜨리지 못해 울부짖는 바람에 악착같이 맞서야 하는 것이 삶이라면 그야말로 아찔한 일이다. 아닌 게 아니라 폭설이 잦은 한겨울에는 허기로 탈진한 산양들이 발견되어 안타까움을 준다.
장작 패는 꺽쇠를 훔쳐보며 안달하는 안방마님이 새벽 유선영화를 틀기만 하면 왜 그리 자주 등장하는지. 제목도 낯 간지러운 국산영화로 법정 상영시간을 맞추는 선정적인 장면 아니라도, 일명 짐승남이 등장하면 환호성을 지르는 한편 한숨을 쉬는 이도 많다. 현대인의 결핍 요소가 바로 야성이어서일까. 어느덧 여성이 좌지우지하는 우리 사회. 남성은 수단을 위한 부속물이라면 지레 내지르는 낭설일까. 시대가 바뀌었다지만 아들을 대하는 얼굴과 사위를 대하는 어머니 얼굴이 똑같다면 이는 가식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딸과 며느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엄마에게 물어보고 오겠다.'는 남자를 보고 상대 여자가 입을 삐죽이지만 엄마가 되어 봐라, 그런 아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어쩌는 수 없이 너도 나도 눈앞 여자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간밤 우레와 빗소리에 뒤척이기도 했다. 예보는 오늘도 일백 밀리미터 이상의 소나기를 퍼붓는다고 했지만, 틀어박혀 있기 싫어 내닫는 북한산 비봉능선. 변화무쌍한 구름이 감싸기도 하는 우락부락한 바위가 예사롭지 않다. 아무리 옷을 입어도 맞는 옷이 없어 아예 근육질을 드러내기로 한 산. 애초부터 길이었던 곳이 있나. 이카루스의 날개가 없어도 포기할 줄 모르는 거미인간이 곳곳을 기어오른다. 저마다 봉우리 하나씩을 꿰차기 위해. 그걸 쳐다보며 은근히 손바닥을 긁었다. 지난 여름과 확실히 다른 바람이 바위에 몸을 부벼 '웅웅' 우는 소리를 냈다.
보정 없는 사진은 흐린 날의 북한산 비봉능선
Govi, Tor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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