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억시니의 손길 같은 한낮 햇볕. 땀이 돋아 끈적이고 미끈덕거리는 맨살. 피부도 예전 같지 않아, 귀찮기 그지없는 일이어도 햇볕 아래 나설 적에는 선크림을 바를지 고민중이다. 아무렇지 않게 대낮에 백포를 덮어 쓰고 다니는 이도 눈에 띄더라만. 이해하지 못하던 일에도 날 세우지 않고 수긍하기로 했다. 그렇게 무뎌진다면, 조만간 아무하고나 휩쓸려 깔깔거리며 다닐지도 모를 일이다.
어릴 적 동네 앞 신작로가 한남대교를 넘어서면 만나는 서울 남쪽 강남대로나 테헤란로처럼 훤한 때가 있었다. 군용차량이라든지 고물트럭과 합승버스가 가끔 굴러다녀서, 동무들과 신작로에만 나서면 달음박질하기 일쑤였다. 자라서는 발이 닫지도 않는 자전거 페달을 억지로 밟아 남들보다 앞서가려고 애를 썼고, 지금은 자동차 가속페달을 밟기 위해 붕붕거리는 마음을 겨우 짓누르고 있다. 너도나도 차를 몰고 나온 바람에 꽉찬 도로에 갇혀 어쩔 줄 모르는 신세라니. 그 시절의 신작로는 학교를 지나 활터가 있는 산을 돌아나갔다. 황량한 벌판이나 마사토로 발이 미끄러져 내리던 벌거숭이 산 언덕이 드문드문했다. 그래서 바람도 거침없다. 천방지축 날뛰던 그때가 이제 아련한 꿈속 풍경처럼 여겨질 뿐이다.
밀리는 길에서 꼼짝 못하고 있는 꼴이 한심하다. 약속시각이 지난 지도 한참, 전화로 겨우 상대방에게 양해를 구해 두었다. 눈앞에 유료주차장이 보인다. 머리를 굴려 허겁지겁 차를 대고 쫓아나왔다. 서두르고 애쓸수록 마음만 급할 뿐 사람에 치이고 걸음은 더뎠다. 아스팔트를 달구는 열기로 주변이 가마솥이다. 여기저기 우뚝한 빌딩 윤곽이 어른거릴 정도로. 햇볕이 점령한 한길을 피해 골목길로 들어섰다. 이 근방 지형을 떠올렸다. 크게 궁글리며 이어진 대로에 비해 꺾어지고 삐뚤빼뚤해도 이편 골목이 지름길인 것만 같다. 성큼성큼 걷다가는 의외로 조용한 세상이어서 멈칫한다. 완보로 바꾸었다. 누군가 물을 뿌렸는지 문간 밖이 젖어 있기도 해 조심스레 밟고 지났다. 칠이 벗겨진 나무 대문 옆에 늘어진 누렁이도 지나쳤다. 정열을 토하듯 붉은 칸나 서너 송이가 내 키만큼에서 빤히 쳐다본다. 어릴 적에는 블록 벽돌 칸을 세며 걸었다. 헐떡거리며 마음속을 죄던 열풍이 수그러들었다. 가질수록 빈곤감은 커지고 먹을수록 허기지던 게 언제부터였는가. 담장 아래 늘어놓은 화분. 열을 선 고추나무에 달린 고추들이 발갛게 익는다. 보석처럼 반짝이는 담장 위 사금파리와 유리조각을 딛고 능소화 덩굴이 축축 늘어졌다. 심지어는 더미로 버틴 무성한 잎 사이 커다란 호박꽃도 여기저기 활짝 웃고 있다. 나비가 두어 마리 춤추며 담장을 넘어갔다. 쉬던 잠자리가 인기척에 날아올랐다가 다시 꽃대에 내려앉았다. 직립으로 발돋움하던 햇빛이 꺾여 내린다. 안달하는 바람이 머리를 쳐든다. 고립된 섬처럼 여기서는 아우성이나 자동차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세상에 부대끼면서 잊고 있던 내가 자란 지방 도시를 생각해냈다. 순식간에 다른 시간 속으로 들어온 듯 안온하다. 지친 발걸음을 맞는 골목길은 익숙했다. 여름 태풍에 자식처럼 아끼던 가두리 전복 양식장을 송두리째 잃은 어민은 울지 않았다. 억장이 무너지는 듯한 일을 당했지만 그 속에서도 다시 일어서겠다는 결의가 보여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눈물을 닦을지언정 쓰러질 수 없다는 다짐을 낳게 한 넉넉함을 이 골목 어디에선가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일일이 기억해낼 수도 없는 동무들의 이름을 생각하려고 애를 썼다. 초조감이 사라지며 아득한 시간이 열렸다. 부르면 금방이라도 문 열고 쫓아나올 듯한 얼굴들을 보며 슬며시 손을 들었다.
Medwyn Goodall, 1492 Conquest Of Paradi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