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곧게 선다는 것

*garden 2012. 11. 2. 08:59




명절 귀성 행렬, 이골이 붙어 괜찮지 않냐고? 갇혀 있어 봐라, 좀만 쑤실까. 꽉 막힌 도로에서 조금만 참으면 되겠지 하던 게 벌써 수 시간을 넘겼다. 이러다간 죽도 밥도 안돼. 급기야 눈앞 인터체인지를 빠져 나왔다. 근방 산에 올랐다가 느지막히 가자. 등산용구도 챙겨왔으니 말이야.
하늘도 바쁘다. 금방 비가 쏟아질 듯 구름이 가렸다가 해가 삐죽 나기도 하고. 쟤들도 귀향중이신가. 혼잣말로 묻고 답하며 오르는 산길. 그윽한 숲 냄새가 후욱 끼친다. 오를수록 짙은 가을과 동화되어 차츰 나아졌다. 꼬물꼬물 기던 움직임과 달리 수직으로 치솟는 기쁨이 더해져 무릎을 크게 굽혀 걸음을 뗐다. 우뚝한 산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가. 치솟는 안부에서는 영혼이 부시시 쫓아나와 나란히 걸었다. 일부러 소리내어 가쁜 숨을 내뱉었다. 서두르지 않아도 정상까지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지난 번 태풍으로 지붕 일부가 날아가 버려 을씨년스런 정자에 올랐다. 겉옷을 벗으려다가는 포기했다. 스산한 바람이 활개친다. 산 아래 주차장에 차를 대며 매점에서 산 막걸리를 꺼냈다. 곤줄박이들이 거리낌없이 정자에 드나든다. 그게 신기하다. 호기심어린 음성이 나 돌아본다. 어느새 뒤따라온 이가 새를 가리킨다.
'어머, 도망가지도 않아요.'
눈이 딱 마주쳐 대꾸하지 않을 수도 없다.
'사람들이 던져주는 먹이에 길들여졌나 봅니다.'
등산모자를 눌러쓴 챙 아래 동그란 눈이 인상적인 아주머니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맹랑한 감을 지울 수 없다. 낯선 사내가 무섭지도 않나. 내색을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선뜻 내 앞으로 나선 아주머니가 펼쳐진 산을 가리킨다.
'오늘 제가 저 산을 모두 돌아오다니.....참 대견하네요.'
막걸리라도 한잔 건네려다가는 고개를 흔든다. 명색이 차례를 지낼 몸이지 않은가. 이발도 하고 목욕탕에라도 들러 정갈하게 갈무리해야 한다. 세월 따라 풍습이 변해 예전같지 않아도 명절이니.
'이, 새 이름은 무엇인가요?'
'정자 지붕을 빨리 고쳐야겠네요.
이런저런 말을 계속 던진다. 그러다가 입 다문 내가 의아한 표정이다. 아무래도 수평적인 질문은 낯설다. 공감 없이 대하는 낯선 이에 대한 적응도 어렵다. 산에 오른 다른 사람들이 두런거리며 정자 쪽으로 다가왔다.

미심쩍은 눈길을 주던 아주머니가 내려갔다. 어차피 통하는 길이니 반대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내려가 우선 맛있는 음식으로 요기부터 하자. 다음에는 목욕이라도 하고 가야지. 급박하게 쫓아내리는 산길에서 활엽 참나무들이 소나무로 바뀌었다. 바쁜 청솔모가 나뭇가지를 타고 가로질러 가지 않았을까. 들썩이는 바람에 솔방울이 툭툭 떨어졌다. 가파른 등성이에서 배낭 끈을 조이며 자세를 고친다. 코끝에 소나무 향이 감돈다. 마른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엉겁결에 주저앉아 아래를 보았지만 비탈진 경사 뿐. 몸을 일으키려는데 발을 딛을 수 없다. 무지막지한 통증이 일어났다. 이제껏 겪지 못한 일이 생겼어. 조금 전 붙임성이 좋던 아주머니 얼굴이 떠올랐다. 불손한 생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한 내 행동이 불만스럽다. 인기척도 드문 곳에서 욕지기를 참을 수 없어, 상처 입은 늑대처럼 크르릉댔다.
'빌어먹을, 이게 뭐야!'
정성을 모으지 못했을까. 우리 조상님보다 드센 아주머니라니. 명절 일정과 연휴 뒤 스케줄을 어떻게 하나. 마라톤 선수가 초반 코스에서 벗어나 길을 잃어버린 듯 멍해졌다.












Jean W. Beck, Tears Of Stein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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