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에는 내 몸을 욱죄던 끈이 떨어져 지구 밖에 나앉은 것처럼 여겨진다. 미뤄둔 일을 해치우고 별 다른 계획 없이 빈둥거린다. 몇날 며칠 세면이나 이닦기 외 잡다한 일을 배제하고 지났다. 게으른 아침에 얼굴을 만지면 코 아래와 턱 밑이 꺼끌꺼끌했다. 이참에 수염이나 길러봐. 영화 속 해리슨 포드나 찰턴 헤스턴의 수염 범벅인 근사한 모습을 생각해냈다.
어머니는 너저분한 걸 못보시던 분이었다. 이발한 내 머리가 탐탁치 않으면 기어이 다시 갔다오게 만들었다. 나야말로 이발소 아저씨가 깎아준 대로 하고 왔는데 뭘 어쩌라는 건가. 못마땅하면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온돈 주고 반머리를 깎는데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며 타박이 줄기차게 이어진다. 어른이 되어서도 코 아래가 거뭇하면 기겁하셨다. 수염을 기르겠다고 작정한 건 아니며, 터프해진다거나 강렬한 이미지를 구축하겠다는 것도 아닌데. 자연 그대로이고 싶은 마음을 왜 모르시나.
머리카락이나 수염은 애초부터 인류를 귀찮게 만들었다. 방치하면 벌레가 기생하고, 사냥이나 야외활동에 방해가 되었다. 그러므로 역사 이전에는 돌칼이나 조개껍질, 상어이빨 등을 이용해 늘어진 털을 짧게 자르는 수준으로 행해졌다. 그러다가 마침내 수메르에서 미용 목적의 면도가 행해지게 되었는데 그 방법이 기발하였다. 족집게로 아예 수염이나 체모를 뽑기 시작했는데, 이에 따르는 시간이나 비용, 노력과 고통이 대단했다. 고대 로마에서는 수염을 기르는 하층민이나 이민족이 경멸대상이었다. 변변한 거울이나 예리한 칼날 없이 혼자 수염을 깎는다는 게 예삿일인가. 결국 노예가 있거나 이발사에게 돈을 지불할 능력이 있어야 깔끔한 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로마의 5대황제 네로는 품위가 없다는 주변 비난에도 불구하고 수염을 길렀다. 어떤 일이든 본보기가 되면 따르는 이도 생긴다. 이후 면도를 기피한 황제들에 의해 수염을 기르는 일도 차츰 허용되었다.
'시집 가는 날 등창 난다'더니, 나도 결혼하는 날 아침에 서두르다가 면돗날이 삐끗하면서 코 아래에 상처가 났다. 피가 그치지 않고 줄줄 흘러 무슨 일이 나는 줄 알았다. 상처에 바르는 연고도 변변찮았고, 무엇보다 상처를 감추지 못해 식장에 선 내내 신경이 쓰였다. 요즘 같으면 화장으로 감추기라도 하는데 그런 식견도 없었다. 면도가 보편화되며, 면도기와 면돗날의 개발 뿐만 아니라 연고나 면도크림의 발명도 함께 이루어졌다. 다른 얘기이지만 근대해부학의 창시자 베살리우스가 기존의 관행을 뒤엎고 의학의 기초를 다시 세운 것은 중세 이후이다. 이전에는 신이 창조한 인체를 훼손하는 일은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그러다보니 잘못된 의학상식이 줄기차게 전승되어 내려왔는데, 이탈리아 르네상스 때에 이르러 이발사들이 칼을 잘 다룬다는 이유로 제한적으로 시체해부에 참여하는 게 허용되었다. 지금 이발소 표시등이 파란색의 정맥과 흰색의 붕대, 빨간색의 동맥을 뜻하며 돌아가는 것도 이에 연유한다.
꽃처럼 눈길을 받고 싶은 여자처럼, 남자도 태산처럼 눌러앉아 있지만 그 존재감을 드러내 보이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 머플러를 두른다거나 넥타이를 맨다거나 악세사리를 동원하는 방법 외에 머리나 수염을 기르거나 깎고 모양을 내는 일마저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다.
나는 고민중이다. 연말 내내 이어져야 하는 수 많은 브리핑과 송년회 등에서 어떤 튀는 짓거리로 존재감을 드러내야 할까.
Tol&Tol, The Outl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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