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숨가쁜 우리

*garden 2013. 5. 2. 16:37




일기가 불순해도 봄은 왔다. 사무실 뒤뜰을 주차공간으로 써 어지러워도, 따뜻한 햇볕을 받아 화단 가득 내려앉은 영산홍, 자산홍 들. 비로소 세상이 밝아졌다. 연둣빛 아깃닢 돋은 촘촘한 가지 사이가 소란스럽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한 떼의 참새가 기척에 재잘거림을 멈추고 날아올랐다. 콘크리트 바닥에서도 찾을 모이가 있는지 천덕꾸러기 비둘기도 종종 찾아든다. 저번에는 척척한 봄비 속에 다리를 다친 비둘기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더니, 햇빛 좋은 오후쯤에는 깃털이 푸썩해진 너덧 마리가 갈짓자로 종종댄다. 눈썰미 좋은 동료 직원은 그 중 목덜미에 독특한 색상 조합을 보이는 비둘기를 용케 기억하고 가리킨다.
'쟤가 요즘 날아드는 비둘기 중에서 가장 돋보여요.'
근방에 비둘기가 많아도 아주 많다. 어떤 때에는 길가에 떼로 앉은 비둘기들이 발에 채일 정도이다. 세균덩어리라며 우리 아이는 비둘기 퍼득거림에 질색하던데, 무심히 지나는 나야말로 살펴본들 똑같은 녀석들로 볼 수밖에. 다친 흔적이 있거나 색상이 특별하면 모르지만, 다음 번 그 비둘기를 볼 때도 으레 시각이 바뀌지 않는 건 하등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많이 살아온 건가. 어느 때부터 개별적인 것보다 전체를 보는 경향이 있다. 여기가 오피스 타운이어서 곧잘 맵시 있게 유니폼을 차려입은 사람들과 마주친다. 헌데 유니폼도 회사마다 다르고, 계절 따라 바뀌고, 뒤섞여 인제 구별이 용이하지 않다. 심지어는 자유로운 복장에 사이트 주소를 새긴 일률적인 조끼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통일된 복장을 입혀 놓으면 생각이나 하는 행동까지 닮는 경향이 있다. 군사학과에 재학중인 여학생이 지나는 모습을 가끔 본다. 절도 있는 걸음걸이와 다문 입술이 옹골차 보이는데, 어떤 날엔 청바지 차림의 발랄한 소녀로 변신한 걸 보고, 같은 아이인지 갸웃한 적도 있다.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의 미래사회는 개인시대라고 하였다. 즉, 경제활동이 개인의 지식이 중심이 되어 우선 시간개념의 변화가 이루어지며, 다음에는 공간이 다양화되고, 차츰 지식의 확산과 융합이 변화를 이룬다고 하였다. 일에 몰두하는 시간이 제각각이거나 친구를 만나기 위해 사무실에 찾아가는 대신 손전화로 위치부터 확인하게 되는 일, 조직보다는 창의성을 북돋우는 것도 이를 단적으로 나타낸다. 당연히 대중의 인기와 신뢰를 한몸에 받는 슈퍼개인도 등장한다.
어제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들른 국수집 티브이에서는 다저스타디움의 류현진과 싸이를 방영하고 있었는데, 얼마나 많은 이가 이를 보며 환호하고 대리만족을 느꼈을까. 한때 광우병 파동을 보고, 오프라 윈프리가 '햄버거를 먹지 않겠다'라고 한 순간 쇠고기 값이 2주 연속 폭락하여 마침내 텍사스 목장주협회에서 오프라를 상대로 일천이백만 달러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구체화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지만 개인시대의 나는 어떠한가. 평균수명으로 따져도 삼분의 일이나 남은 인생. 나중 나는, 사무실 뒤편을 드나드는 비둘기처럼 마냥 의미 없는 걸음을 할지도 몰라 은근히 염려스럽기도 하다.









연(蓮)씨의 발아




James Galway(& Cleo Laine), Children Of Sanche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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