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맛있는 책의 레시피

*garden 2013. 5. 7. 12:12




아는 이가 저만큼에 앞서간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책과 서류 등으로 재인 책상머리에서 신문을 뒤적이고 있는데 인터폰이 울린다.
'왜 그리 빨리 가십니까? 쫓아가다가는 숨이 차 결국 따라잡지 못했어요.'
늘 손에 들고 다니는 가방과 짧게 떼는 걸음을 떠올렸다. 케주얼화를 즐겨 신지만 무릎이 약해 걸으면 쉬이 지친다며 변명한다. 빠른 걸음으로, 직선길을 그으며 뒤돌아보지 않고 걷는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라고 믿으며, 세면도 그렇게 하고 옷도 그렇게 입고 밥도 그렇게 먹고 심지어는 잠도 그렇게 잤다. 그러고보니 내 삶 자체가 그럴 수밖에.

'금방 가져온 따끈따끈한 책입니다.'
가급적 웃는 표정을 만들기 위해 애를 썼다. 침을 삼킨다. '꿀꺽'하는 소리가 의외로 크다. 들렸을까. 내색도 없이 책상에 올려 둔 책을 집는 하얀 손을 본다. 맨 먼저 나온 책을 가져오기 위해 새벽처럼 일어나 달려갔고, 가쁜 제책기 앞에서 철컥거리는 기계음과 머리에 두건을 쓰고 바삐 움직이는 아주머니들에 둘러싸여 서성이다가 골라낸, 비로소 모양을 갖춘 책을 가슴에 품었다. 무광에 실크인쇄를 입힌 표지에 지문이나 매만진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몇 번이나 살펴보고 확인하며 문지르고 닦았다. 얇고 매끈한 미색종이에 묻힌 인쇄 기름이 책을 열 때 슬쩍 풍겨야 할텐데. 내용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운 떡이어야 하지 않나. 우선 판형이라든지 표지나 제호, 색깔 등이 촉촉한 봄날 이슬비처럼 마음에 착 감기면 좋을텐데 말야.

온종일 전화를 잡고 씨름하던 윤과장. 급기야는 뒤로 질끈 묶은 머리를 풀어 헤뜨린다. 숨을 고르는데 눈두덩을 덮은 손가락 사이 눈물이 내비친다.
'대체 누가 속썩입니까?'
'화요일에 보내겠다던 교정지를 안보내주네요. 오늘이 금요일이니 반드시 나와야 하는데, 아직 입력도 안했다니.'
옆에서 대신 설명한다. 마음이야 뻔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부딪치던 난공불락의 존재와 존재들. 입장 차이를 깨려면 쇠망치를 무법자처럼 휘둘러도 속시원치 않을 판국이다. 나도 그런 적이 비일비재했다. 무던히도 말을 안듣던 오퍼레이터들. 순서대로 해주겠다고 뾰족한 소리를 고슴도치 가시처럼 내보이면서도 부장이나 이사가 던져 놓고가는 일은 두말 않고 날름날름 해치운다. 이를 꼬투리 잡으면 해찰을 부리기 십상이다. 윽박지르기보다 구슬러야지. 아니꼽지만 커피도 사고, 핑게를 대며 밥도 사 주어야 한다. 그뿐이랴. 글과 일치하지 않는 삽화 때문에 고쳐달라고 하면 일러스트레이터는 콧방귀만 꼈다. 매달려 밤새 작업을 해냈더니 난도질만 한다고 투덜댄다. 꼴을 보아하니 푸썩푸썩한 게 히피같은 녀석들과 난장판으로 놀다 온 게 뻔하건만. 그것도 예술이라고 이 핑게 저 핑게를 대며 비켜가려고만 한다. 명색이 그림으로 먹고 사는 자기가 그걸 감안하지 않았겠느냐는데, 이 녀석들은 게으름을 전가시키는데 일가견이 있다. 이참에 잘 못그려진 그림 때문에 원고를 다시 써야 할까. 앞뒤의 흐름을 위해 문맥을 바꾸었다가는 글쓴이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어법에 맞는 말로 바꿔놓아도 걸핏하면 자기가 즐겨쓰는 사투리어로 되돌려 놓는다. 주제에 잘난 척이나 말지. 네 자랑질에 이골이 나 손톱이나 물어뜯고 있는 내가 보이지 않나.
보고 또 확인했건만 색상이 잘못 처리된 곳을 교정쇄에서 찾아냈다. 이거야말로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인쇄공정에 대기 바빠 너도나도 쫓기면서 이판사판으로 제판에서 넘긴 탓이다. 고속 윤전기로 돌아가는 판국에 기계를 멈추라고 고래고래 소리쳐야 했다. 나이 많은 공장장은 그야말로 목에 핏대를 세워 삿대질을 한다. 밤낮 없이 촌각을 다투며 돌아가도 시원찮은 판국에 기계를 세웠다는데.

바람이 불 때마다 사방에 휘날리는 꽃비가 대견하다. 간절하게 기다린 봄은 순식간이다. 그래도 봄이라 느낄 수 있는 지금의 행복감은 어머니가 밥상에 올리시던 따뜻한 쌀밥 한 그릇이다. 비바람 없이 피어난 꽃은 온전치 않다고 자위하면서, 고집과 선입견과 갈등을 버무려 비로소 한 권의 책을 마쳤다. 한 권이 쌓이고 쌓여 앞길에 태산처럼 놓이기를. 그래서 길을 가로막은 책장을 펼 때마다 산지사방 놓인 글 이랑으로 쫓아들어가 맛있는 글을 얌냠 드시기를!












Jacques Offenbach, Jacqueline du Pre. Elgar Cello Concerto






'不平則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숲을 기억함  (0) 2013.05.20
필요한 어떤 것  (0) 2013.05.14
숨가쁜 우리  (0) 2013.05.02
봄날 무상  (0) 2013.04.24
화사한 여로  (0) 2013.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