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필요한 어떤 것

*garden 2013. 5. 14. 09:44




이솝(Aesop)이 사막을 횡단하는 대상 행렬을 따라가게 되었다. 노예였으므로 짐을 들어야 한다. 부피가 큰 식량 보따리를 맡아 끙끙거리는 이솝을 보고, 다른 노예들이 비웃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이솝이 가진 식량은 줄어들었으며, 이솝을 비웃은 노예들의 짐은 무역이 활발해질수록 많아졌다.

이솝처럼 앞뒤를 가늠하는 혜안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여행 짐을 극히 간소하게 꾸린다. 반면에 내 주변 사람은 짐이 되더라도 필요한 것을 모두 챙겨간다. 일정을 따라 움직여야 하는 나는 시계도 없어 현지 사람을 붙잡고 손짓발짓으로 시각을 묻기 일쑤이다. 잔뜩 챙겨간 동료는 호텔에서 머리를 감은 다음 전압이 맞지 않아 드라이어가 작동되지 않는다고 난색을 표한다. 높은 산에 올라도 마찬가지이다. 간단한 행동식으로 떼운 나는 더 이상 먹을 게 없어 무료한 반면 누군가는 바리바리 싸온 음식을 '냠냠쩝쩝' 소리내어 한참 씹고도, 코스 요리처럼 과일을 몇 가지나 더 꺼낸다. 그 친구는 올라갈 때와 달리 내려올 때는 복장도 바뀌어져 있다.

학창시절로 되돌아간 꿈을 꾸었다. 푸릇푸릇한 때여서 안도하다가 책가방을 잃어버린 걸 깨달았다. 가방을 찾아 헤매는 내내 난감하고 아찔하다. 평상시 아무것도 들고 다니지 않는 편인데도 불구하고 그런 꿈을 꾸는 까닭은 무엇인가.
소유에 대한 집착증이 있는 건 아닌가. 허튼 물건을 이것저것 챙기는 편이 아닌, 꼭 필요한 것만 갖다 보니 잃지 않으려고 지레 조급한 건가. 퇴근길에 내앞에 선 여자는 피곤하다. 어깨에 두둑한 가죽 핸드백을 메고, 커다란 스마트폰에 시선을 두고 있는데, 불룩한 쇼핑백을 든 힘줄 돋은 손이 파리하다. 짐대에 올려도 될 터인데 힘겹게 가다니. 대신 들어주려고 손을 내밀다가는 멈칫한다. 내앞 여자 뿐 아니라 전동차 안 너나없이 한 보따리씩 짐을 들고 있는 게 아닌가. 오월 행사가 많다 보니 소용되는 물건들, 선물이나 케익 등이 넘쳐난다. 우리 아이도 오늘은 한아름의 선물 꾸러미를 들고, 이 다음 다음의 전동차로 오고 있지 않을까.
'필요한 것이 있음 말해봐.'
'지금 딱히 없어요. 생각나면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모름지기 선물이란, 지난 기억에 대한 감사의 정을 담아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헤아리지 못하는 나야말로 젬병이다. 던진 말에 구애받지 않으니 겉으로야 애석하지만 어쩌면 당연하게 넘어가는지도 모른다.

한여름처럼 기온이 오른 휴일에 저 향로봉 암벽을 기어올랐다. 거침없이 쏟아내는 가쁜 숨. 빗물처럼 흐르는 땀방울. 세심하게 살펴야 하는 주변과 끝까지 놓지 말아야 할 긴장감, 평형감과 주의력 들. 주저앉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현실이 다른 것을 돌아볼 겨를이 없게 만들었다. 따지자면 그렇게 앞만 보고 살아온 바람에 한눈 팔 수 없었다. 올라가야 하는 길만이 존재해 꾸역꾸역 오른다. 우화의 꿈인들 꾸지 못할까. 암릉에 서자 선한 바람이 일렁거린다. 비로소 나를 끌어올리고 지지하여 세운, 만신창이 발과 신체에 새삼 감사하다.












Yuriko Nakamu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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