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푸른 갈구

*garden 2013. 5. 30. 17:43




밭뙈기를 안방처럼 여기는 텃밭 할머니. 지난 세월만큼 겹겹이 놓인 밭고랑에서 꼬물대는 폼이 우화를 꿈꾸는 배추벌레 같다. 무심한 며느리에 대한 지청구를 언뜻언뜻 늘어놓으며 밭에 있으면 차라리 맘 편하다는 얘기에 먹먹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는데, 뜨거운 볕 아래 한주먹 돌덩어리로 굴러다니는 모습이 안타깝다. 거기서 곡물도 자식 같아 돌보기를 게을리하면 시시해진다는 걸 알았다.
더운 날에 김매기를 한 다음 바삐 돌아왔더니 연락이 왔다. 농약을 치는 김에 우리 고랑에도 같이 뿌렸다는데, 또 다른 날에는 퇴비를 빌려 써 그에 따르는 돈푼이라고 치뤘는데 달라는 액수가 의외로 많다. 한쪽 눈을 질끈 감았다.
땅은 정직해 일구며 살수록 욕심이 생겨 밭고랑이 더 필요하게 되었다. 마침 힘에 부쳐 농사를 더 못짓겠다는 인근 다른 할머니 땅도 양도 받고, 경작하는 밭고랑 옆 내버려둔 자투리 고랑마저 부치겠다고 할머니께 말을 건넸다.
다른 할머니 밭고랑 여덟에 겨우 십만 원 주었는데, 이 할머니는 한 고랑에 오만 원을 달란다. 새삼 쳐다본다. 원래 땅주인은 다르다. 땅을 놀릴 수 없다보니 주인은 경작을 눈감아 준다. 단지 선점에 따른 대가여서 얼마이든 줄 수 있는 금액이지만 이건 아니다. 돈독이 올라도 그렇지, 정중히 거절하고 말았는데 그게 탈이 났다. 다음 날 다른 할머니가 전화를 했다. 아무래도 돈을 더 받아야겠다고 부득부득 우긴다. 누군가의 부추김을 받지 않고서는 이미 건넨 돈 이상을 내라고 떼를 쓸 수 없다. 야멸차게 쏘아붙였더니 그제서야 우물쭈물 들어가 버렸다만 어른들 행태에 난감하다. 보고 싶지 않아도 마주치는 게 사람이라, 마음을 정하지 못했는데 밭에서 저만큼 보이는 할머니가 지레 피해다닌다.
'늙은 생강이 매워도 찔리는 데가 있나봐.'
그 나이에 잘보이겠다고 저리 진한 화장을 한 건 아니겠지. 욕지기가 목까지 차오르지만 겨우 삼켰다. 웃는 낯이면 한 말을 또 하고, 거듭하여 눈쌀 찌푸리게 하더니, 이즘엔 아예 눈앞에 얼씬거리지 않았다. 무심을 가장해도 들끓는 마음, 지리멸렬한 밭둑에 있다 보면 사는 게 어렵고 씁쓸하기만 하다.

밭두렁에 병정처럼 도열하여 새파란 독기로 속을 비운 파가 부럽다.
옛날 옛적,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던 시절. 지나가는 나그네도 때려잡고, 이웃도 잡고. 마침내 그 어미마저 잡아먹은 걸 알게 된 이가 눈물을 머금고 세상을 뒤져 찾아냈다는 파. 전부가 아니면 나를 걸지 않겠다고 맹세한 적도 많건만 때로 전부가 아닌 일에 휘말려선 전부를 흔들어 놓는 게 아찔한 나날이다. 새삼 독기로라도 채워 무장해야지, 원.








Chava Alberstein, The Secret Ga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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