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 앞에서 바로 내리는 엘리베이터. 숨을 고르며 안도한다. 지친 걸음을 멈추고 허겁지겁 먼지를 떤다. 온종일 나를 이고 다닌 후줄그레한 신발을 내려다보았다. 엘리베이터가 닫히고 현관문 손잡이를 잡았다. 문의 이쪽과 저쪽은 전혀 다른 세상인 것만 같다. 예전 귀가하시던 아버지 손에 들려있던 군것질 거리를 떠올렸다. 어쩌면 당신은 바깥에서 부대껴 닫아둔 마음을 집으로 오던 중 식구를 떠올리고 열린마음으로 전환시키고픈 자기암시로 점빵에 들르지 않았을까.
무심코 들어섰다가 낯을 찡그린다. 컴컴한 가운데 벌어지는 현관 소동을 우두커니 보았다. 저마다 날뛰던 것이 가라앉자 빈 공간이 덩그레 떠올랐다. 엎어진 신발짝은 엎어진 대로, 겹치거나 짝과 떨어져 하나씩 따로인 신발짝은 그들대로 난장판이다. 미처 닫히지 못한 신발장 문 사이로 삐죽한 뾰족구두와 우산 나부랑이 들. 헛기침을 해도 반응 없는 거실에 발을 디밀자 한숨부터 쫓아나왔다.
'꼭 그렇게 규칙에 따라야만 한다는 게 여지가 없어 싫어요. 답답하기도 하고.'
'규칙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습관으로 지니면 어때? 벗어둔 신발 코가 아예 바깥으로 향해 있어서 나갈 때 신기 편하도록 하면 안될까!'
섬을 한바퀴 돌아왔지만 미진하다. 번갯불에 콩 볶아 먹기여도 이럴 수는 없다. 애초 우리를 태운 기사는 관광객의 일정은 안중에 없다. 얼른 돌고 다음 일정까지 겹치기로 해결하여 보수를 배로 받으면 그만이다. 경황중에 원점으로 돌아오자 그새 새로운 관광객들로 채워진 시발점은 그야말로 북새통이다. 다들 왜 섬이 좋은가. 부글부글 끓어올라 한계점에 다다른 마음이라도 식히려는지. 와중에 잇속챙기기에 이골이 난 장사치들과 관광은 커녕 고역으로 찌든 이들이 얼굴만 맞대면 언성을 높인다. 차로 미어터지는 항구도시 좁은 길에서 한시간째 대절버스가 빠지지 못했다. 처음에는 대열에서 벗어난 일행을 태우려고 기다렸으나 나중에는 차에 막혀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심지어는 바로 앞에 사람이 있어도 빵빵~거리는 경적으로 놀라기도 한다. 걸죽한 입담을 가진 기사가 욕을 그치지 않는다.
'몇 시간째 이 지경이니, 쓰나미(tsunami)라도 확 들이닥쳐 쓸어버려야 해.'
세상 돌아가는 형국이 누구인들 마음에 찰까. 어느 때 혼란스러운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초인의 힘을 얼마나 갈구했던가. 아닌 말로 역성을 꿈꾸기도 했다. 끓어올라 넘치는 속을 주체하지 못해 어둠이 내리기도 전에 찾아든 선술집. 와글거림이 파도처럼 몰려다녔다. 앞에도 옆에도 불만에 가득한 이들이 충혈된 눈을 부라리는 바람에 나는 일말의 불만조차 토로해 낼 수 없었다.
그게 언제 적이던가. 들끓는 피를 가두고, 나를 억눌러 세상에 해악이라도 되지 않게 하려고 무던히 조바심을 치던 일. 그렇게 수긍하고 받아들이고 눅었어야 내가 온전해질 수 있었다. 너희들처럼 아무렇게나 해놓고 쫓아다니지 못했다. 어질러진 뒤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대절버스의 기사 마음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은 여기 없다. 하지만 쓰나미가 들이닥친들 어지러운 세상이 지워질까.
효창공원앞역 주변은 예전 철로를 걷어내고 공원을 만드느라 시끌벅쩍하다. 햇볕이 활화산처럼 터진 오후에 지게차를 운행하다말고 색소폰을 부는 기사를 보았다. 올라갔다가 꺾어지는 굵직한 음율에 따라 진정되고 잦아드는 마음이라니. 새삼 잔잔해진 물결을 본다. 바람이 지난들 흐르는 물이야 달라지겠느냐. 그렇다고 물처럼 흐르기를 바라지 않는다.
일러두고 싶다. 지난 자리마다 어지르고 흔적을 남기는 이가 되어서는 안된다. 나야말로 이제는 바람처럼 흔적 없이 지워지고 싶을 따름이다.
Hideo Utsugi, From The Northern Count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