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before noon, 일상

*garden 2013. 8. 13. 11:50




김연아가 플립 점프 다음 얕은 인엣지로 미끄러지듯 들어가는 전동차. 문이 열렸다. 사람들이 꾸역꾸역 들어와 콩나물 시루처럼 빽빽해졌다. 내앞에서 사정없이 졸던 여자아이가 별안간 눈을 떴다. 두리번거리더니 벌떡 일어나 냉큼 나를 밀친다.
'잠깐만요!'
앞뒤없이 쫓아나가는 바람에 콩나물 시루에 소요가 인다. 애처러운 외침을 기관사가 들었을까. 문이 덜컹거리며 여닫히는 틈에 아슬아슬하게 뛰쳐나가 보는 이가 은연중 가슴을 쓸어내렸다. 빈자리에는 채 한 정거장 만을 지난 내가 앉았다. 들이받힌 상황이야 작은새 한 마리가 파닥거린 것쯤으로 치부해야겠지.
하루키 신작을 펴든 여자가 내 앞에 섰다. 앞부분에 책갈피를 정갈하게 꽂고, 소란 중에도 정독을 하는지 책장이 한참 동안 넘어가지 않는다. 전동차가 가볍게 흔들렸다. 바닥 뿐인 댄싱슈를 신은 듯 여자가 엇갈리게 스텝을 밟았다. 옆에서 입 벌리고 자던 남자 덩치가 내쪽으로 쏠린다. 어깨로 완강하게 막았다. 그러고보니 근래 서점에 들른 적이 없다. 책 한 권 사 볼 만한 여유도 없이 사는 걸까. 나긋나긋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서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라는 긴 제목의 책을 서가에서 빼들고 미소 짓는 앞 여자를 그려봤다. 얇은 입술에 웃음이 떠오를락말락 하는 게 어떤 대목을 음미하는 걸까. 가늘고 긴 손톱 끝부분을 두껍게 칠한 하얀 네일아트가 이색적이어서 슬쩍 훔쳐본다.
잡지를 뒤적이다가 백팩 광고를 눈여겨보았다. 저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손가방이라든지 등산 배낭이야 몇 개 있는데, 갖고 다니기가 영 마뜩치 않다. 양복에 등산 배낭을 맸더니 우스운 조합이다. 스마트폰이면 다 해결된다지만 나야 통화 이외에는 사용이 드문 편이고. 별도의 책을 챙긴다든지 카메라 등이라도 담기 안성맞춤인 가방을 바라는데. 아무렇지 않게 어디서라도 가뿐하게 착용할 수 있다면 나을텐데 말야. 자리에 앉기를 기다렸는지 날아든 서너 통의 스팸메시지를 삭제했다. 쇠뿔도 단김에 뺀다고, 생각난 김에 이러구러한 홈페이지를 찾아 전화를 한다. 한정된 판매처에서 가격 등을 알아보는데 이건 뭐, 리터당 만원 꼴이나 한다. 적어도 삼십 리터짜리는 되어야 할텐데 아무래도 비싸다.
후끈 달아오른 여름날. 양복 상의를 두고 다니는 바람에 바지 주머니가 성가실 만큼 불룩하다. 남자도 핸드백을 들고 다니는 시대라지만 나까지 그럴 수야 없다. 지갑이라든지 거추장스러운 건 일단 빼두어도 안경, 카드, 필기구, 손전화, 수첩 등 갖고 다녀야 할 게 은근히 많다. 살수록 챙기는 것이 늘어만 가니, 소유나 지참물을 줄이겠다고 작정한들 매번 허사이다. 거울을 보니 겨우 살아남아 이제 몸부림만으로 벅찬 사내가 쳐다본다. 오늘도 그리며 꿈꾸던 바람은 불지 않는다. 꽃으로 흘러 매일 그대에게 다가가는 꿈을 언제 꾸었던가.












Francis Goya, Torn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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