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다시 길에

*garden 2013. 7. 31. 10:39




'날이 우예 이리 좋노!'
메마른 바람 부는 이런 날, 엄마는 손바닥 챙을 하고 하늘을 보기 일쑤였다. 옥양목이나 포플린 등의 옷감을 빨간 다라 한가득 담고 치대서는 탈탈 떨고 널어 놓은 다음 대청마루에서의 오훗잠이 달콤하기만 했는데.
갈라진 입술에 침을 묻힌다. 내륙지방 낯선 곳에서 헤맨 지 서너 시간. 여기가 어디쯤인가. 논밭과 과수 뿐인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한나절 뙤약볕이 지글거려 눈을 뜰 수 없다. 가야 할 곳과 지난 곳을 어림으로 가늠하기엔 자신 없다. 실금으로 끝없이 이어진 길을 터벅터벅 걸었다. 마침내 삼베적삼에 안짱걸음으로 나란히 오는 할머니들과 마주쳤다. 볕에 그을은 살결과 쪼글쪼글한 주름 가득한 얼굴에 무뚝뚝함을 덧씌우고, 사람을 경계하고 있다.
'저어, 할머니. 길 좀 여쭙겠습니다만....'
'우리는 길 몰라.'
'네?'
'......'
'못찾아서 그럽니다만 이러저러한 곳을 찾는데요.'
'글씨, 우리는 몰라.'
'혹시 저 산 너머쯤엔 이러저러한 곳이 있을까요?'
'거기는 우리도 안가봤어. 우린 이 마을에서만 살았어.'
예전 얼결에 다녀간 기억만으로 찾는 길. 길눈이 없는 것도 아닌데 동떨어진 곳만 헤집는 것 같아 답답하다. 생전 마을 밖을 나선 적 없다는 할머니들을 붙잡고 입씨름한들, 어물쩍 인사치레를 하고 걸음을 재촉한다.

점을 찍고 단시간에 거기 도달하는 데 익숙해진 우리. 인제는 길에서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다. 하고 싶은 일, 갖고 싶은 물건, 보고 싶은 장면 들을 그리며 원하는 시각에 제까닥 닿지 않는다면 외려 이상할 지경이다. 사람들은 머물러 있는 점보다 움직이는 선에 익숙해져 기회만 되면 다니고, 길을 나서면 모두 빨리 달리기 경주를 하는 듯하다. 그러다보니 예전처럼 거북에게 뒤쳐지는 토끼야말로 생각할 수도 없다. 그래도 가끔 길에서 헤매는 나를 떠올리기도 한다. 아직 네비게이션보다 감각에 의존하다 보니 지나쳤다가는 되돌아가기도 하고, 제자리에서 맴돌기도 하는 내가 한참 모자란 것처럼 여겨지는 건 왜일까.

습관처럼 허물을 벗고 길을 나섰다. 뜨겁고 불안하고 쓸쓸했던 어떤 것들로 채운 가슴에 설렘이라는 방점을 찍고, 낮잠 중에 입 벌리고 '푸르르' 소리 내는 엄마도 깨우고, 안짱다리로 생의 길을 걸어오느라 고단했던 할머니들까지 모시고 다시금 낯선 길에 섰다.












Lee Oska, Before The 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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