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에서 기름을 채우고 나올 때 뜨문뜨문한 비를 맞았다. 역한 휘발유 냄새에 옆 편의점에서 진한 커피라도 한잔 가져오려다가 포기했다. 차창 유리를 올리며 참았던 숨을 들이킨다. 후욱 끼치는 습기 찬 바람에 빗소리를 들었다. 아침이 다시 밤처럼 까맣게 되었다. 빗줄기가 굵어졌다가 양동이로 내리퍼붓듯 쏟아졌다. 전조등을 켜는 사이 주춤거리는 차들이 앞을 가로막았다. 라디오 볼륨을 높인다. 월요일이어서 그런가. 밝고 경쾌한 댄스음악만 두세 곡 이어지기에 채널을 바꾸었다. 가볍게 흔들리기보다 그냥 가라앉고 싶은 날이다.
간선도로에 올라선 시각이 오전 일곱시 반, 밀리는 구간 훨씬 전부터 꽉 막혀 있지만 아직 여유가 있다. 비가 파도처럼 몰려다녔다. 잦아들다가 거세지기를 거듭하는 통에 윈도브러시 작동타이머를 달리 해야 했다. 한번 긁힐 때 보이는 세상이 빗물에 젖어 있다. 쓱싹거리는 소음이 풍경을 열었다가 닫았다. 시계가 좋지 않아서인지 유난히 앞차가 미적거린다. 차선 바꾸기를 즐기지 않지만 이렇게 지체하는 건 질색이다. 계속 옆 차선 차를 끼워주며 가는 바람에 부아가 치밀었다. 앞질러서 삿대질이라도 할까 보다. 흙탕물로 격랑을 일으키는 한강처럼 샛길에서 합류한 차들로 몸살 중인 강변북로에서 아침 시간이 속절없다. 한 시간 이상 지났다. 나아갈 기미가 있어야지. 차선을 이쪽으로 바꾸면 원래 있던 차선이 움직이고, 저쪽으로 가면 이 차선이 움직이는 것만 같아 조바심이 인다. 지난 금요일에 책상에 올려놓던 원고료나 삽화료 등을 미리 확인하고 나왔더라면. 가만, 이번 주 안건이나 보고해야 할 것 등을 떠오를 때마다 여기저기 적어 둔 것 같은데, 들어가자마자 챙길 수 있으려나. 옆에서 차가 머리를 사정없이 들이밀어 신경질적으로 막았다. 여기 지금 다급하지 않은 이 누군가. 이 많은 차가 아홉시 전에 들어갈 수나 있을지도 몰라. 국지성 호우 예보 따위는 이제 안중에 없다. 마포구청으로 빠지는 길로 깜박이를 켜고 거칠게 차를 집어 넣었다. 도로에 물이 빠지지 않아 슬라이딩을 하듯 차가 휘청 한다. 물살이 일어나 기러기 날개처럼 양옆으로 펼쳐진다. 아홉시가 코앞이다. 여기서 십분 내 들어가야만 한다. 신호를 어기고서라도 우회전을 해야 하지만 멈췄다. 횡단보도여서. 브레이크를 밟고 있어도 차가 이를 드러내고 크르릉 댄다. 요즘 유행하는 장화에 유난히 짧은 팬츠를 걸친 여자가 아슬아슬하게 지난다. 이 정도 비라면 우산을 써도 소용 없다. 장화 속 척척함이 느껴져 내 어깨가 움츠러든다. 필요 이상으로 가속하여 수중도시로 변한 합정동로터리를 질주했다. 한편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전화로 사무실에 일러둔다. 대체로 늦은 적이 없다. 여덟시 전후에는 앉아 있던, 그렇게 여유롭던 시간이 아쉽다. 용강동, 구수동 쯤에선 가로막고 알짱거리는 차를 들이받아 밀어뜨리고 싶다. 거센 비처럼 월요일 아침에 화난 황소로 돌변해 콧김을 팍팍 내뿜었다.
화요일 아침, 어제와 같은 시각에 나왔건만 채 한 시간도 안되어 사무실에 도착했다.
오늘도 아침 비가 추적이기는 마찬가지. 대신 학교 방학 때문인지 길이 텅 비었다. 간선도로에 차를 올릴 때부터 뒤따라오던 차가 있다. 윈도브러시를 작동하면 뒷차도 작동하고, 미등을 켜면 뒷차 미등도 켜진다. 하얀색 쉐보레 운전자가 궁금했다. 끌고 나아가는 사이에 동질감이 생겼다. 저 차도 마찬가지인가. 뿌리 없이 떠다녀야 하는 존재, 섬이 섬을 만나듯 눈물겹다. 잠시 차를 세우고, 한담으로 서로를 격려한 다음 가면 어떨까. 슬쩍 차선을 바꾸자 뒷차도 따라 바꾼다. 어렵쇼! 나를 아는 이도 아닐텐데. 그렇게 마포대교까지 따라오던 차가 도심쪽으로 꺾어지자 아쉬운듯 차체를 흔들며 지나간다. 오래 어깨동무하고 길을 가던 동행을 잃은 듯한 기분이 되었다.
Sergei Trofanov, Mlodo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