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중턱을 훠이훠이 돌아가는 길. 잠자리 날갯짓이 허둥댄다. 이르다고 여겼는데 어느덧 가을이 깊다. 조급할 것 없어도 괜히 서두르게 만드는 계절. 들머리 가파른 오르막을 치느라 허덕였다. 그리고는 임도를 통해 예전 방물장수처럼 몇 개의 산을 거쳐왔다. 이어지는 숲길로 지치고 막막하던 차에 나타난 인가 한 채. 두어 줄 전선을 이고 온 전봇대도 여기서 끝났다. 이런 오지에 누가 살까. 와글거리는 북새통에 넌더리가 나 떠날 요량을 해본 나로서도 머리를 흔들 수밖에. 약초를 재배하는지, 벌거숭이 오름으로 가는 길을 제주도 정낭처럼 나뭇가지 서너 개로 터억 막아두었다. 칡 넝쿨이 뒤엉켜 그늘 진 샛길로 빠져, 첩첩산 속까지 미끄럼을 타듯 뚝 떨어지는 길에 가운데손가락 서너 개를 이은 듯한 살모사 한 마리가 머리를 쳐들고 있다. 적적한 이곳을 지키기라도 하듯 오만하게 버티던 녀석이 나처럼 놀랐나 보다. '리을' 자를 몇 번이나 그리며 숲속으로 허둥지둥 사라졌다. 습한 공기가 후욱 끼친다. 앞쪽에서 물소리가 올라왔다. 여기서 견디려면 키라도 우뚝해야지. 위로만 자라는 나무 등걸을 잡거나 기대며 쫓아내리기를 십분 여. 보인다, 어머니 자궁처럼 희끄므레 입을 벌린, 푸른 이끼에 함초롬히 덮인 무건리 깊디 깊은 속살이.
Yanni, Felit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