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어찌 한 세월

*garden 2013. 12. 24. 10:38





형체가 모호한 시간을 구분해야 합니다. 다들 지난 시간과 앞으로의 시간이야말로 의미가 확연히 다르다고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그 시간이 그 시간이지 않냐고 못박으면 잘못일까요. '시간은 금(金)이다'라는 격언도 있습니다. 한때 국제 금 시세가 천정부지로 뛰어오른 적 있지요. 그렇더라도 제게는 모든 때가 지금이어서 굳이 지난 시간이나 다음 시간을 구별해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늘 같은 시각에 일어나고 때가 되면 식사를 하고 출근하고 사람을 만나고 퇴근하고,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듯한 시간들이지만 나름대로 열렬히 살아왔기에, 이번에야말로 새삼 변곡점을 새기기 위해서라도 금(線)을 그어 흘려버린 제 뒤쪽 시간을 '돌이킬 수 없는 과거'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요.
제가 기억하는 지난 시간은 대개 무채색입니다. 그건 과거로 돌아가 다시 그 시간 속에 선다 해도 같은 결과를 만들어 내겠지요. 연속적인 시간 속에서 저는 안온한 햇빛 속에서 꼼지락대며 지렁이가 지난 흔적 같은 길을 따라가기도 했고, 또 다른 시간에는 다시 깨지 않을 것처럼 눈을 감고 정말 동면에 든 개구리처럼 잠을 자고나면 시끌벅적한 소음과 난리가 난 것 같은 혼돈이 지나고 정연한 봄이 되어 있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했습니다. 몰론 그렇게 꿈을 꾸듯 마냥 잠에 취해 있을 수는 없었지요. 식구들이 사정 없이 깨우고는 얼떨떨하여 눈을 끔벅이는 저에게 어떤 심각한 일이라도 있지 않은지 캐내려는 심사가 읽혀 일어나야만 했습니다. 별 수 없이 아무렇지 않은 듯 제자리에 돌아가 앉아야 하기 일쑤였습니다. 그저 그런, 판에 박힌 듯 지나온 시간도 모여 일상이 되더군요.
사실 지난 시간에 이런저런 색깔을 입히는 게 무의미할지도 모릅니다. 그보다는 앞으로 닥칠 시간에 압박되어 무자비한 질식감을 느끼는 게 사실이었으니까요. 늘 쫓기는 듯 살아가지만 안달하기보다 받아들이자는 비교적 태평한 심사가 적이 도움이 되었을까요. 그래도 한편으로, 이대로 견뎌야 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나를 미래의 시간 속으로 끌고 갈 것인가 하는 등의 복잡한 생각으로 참고 있기 어렵기도 했습니다.

지나고보니 한 세월이 꿈인듯 흘러버렸습니다. 나에게 빠져 있었지만, 시간이라는 수레바퀴에 얹혀 덜컹거리기도 하고, 주저앉을 듯 위태하게 견뎌온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어느 때부터 저 자신이 그 수레의 마부가 되어 있더군요. 끌려다니는 게 마냥 싫어서일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달리던 길을 멈출 줄도 알고, 길이 끊어진 자리에서 용의주도하게 가야 할 방향을 찾아낼 줄도 알게 되었습니다. 당분간은 이렇게 수레를 끌고 가렵니다. 누구든 마찬가지일 겁니다. 줄지어 선 나목이 버티고 있는 숲 속에서 오래 멈춰 있을 수는 없는 일, 가야 한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쫓아나가야겠지요. 수레 위에서 울거나 웃고 노래하고 덜컹이며, 한해를 보내고 또 한해를 맞는 당신께 평안과 복된 시간이 찾아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Phil Coulter,
The Year Of The Fre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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