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다시 좋은 날

*garden 2013. 12. 31. 10:23




스스로를 영양 촌놈이라 칭하는 경석이. 자취방 문을 열고서는 눈을 감았다. 사방 스무 자가 조금 넘는 조그만 방에 빽빽하게 들어앉아 있는 친구 녀석들. 어른 티를 내느라 저마다 삐딱하다. 담배 연기가 전장의 포연처럼 후욱 끼쳐 눈과 코를 마비시켰다. 멋적은듯 들어서는 나를 아이들이 반긴다, 민호가 담배 연기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내며 킬킬거렸다.
'무슨 아지트 같어.'
어깨를 으쓱대자 의례처럼 담배를 권한다. 내키지 않지만 담배 연기를 두어 모금 들이켰을까.
담배를 그 훨씬 이후에 피기 시작하였다. 어떻든 낮이고 밤이고 간에 몰두하여 무의식중에도 빼물고 있기 일쑤였는데, 새해 즈음에 뚝 끊어버렸다. 그게 십여 년 전 일이다.
금연에 대해 어떤 작정을 하지 않았지만 식구들에게서 적잖은 저항을 받던 중이었다. 또한, 사무실 책상 위 재털이를 슬그머니 치운 건 물론 담배를 물기라도 하면 은연중 눈치가 보인다. 이래저래 흡연이 죄악시되는 판국이니 변명도 궁색하다. 송년모임 한 곳에서 밤새 담배를 물었더니 자고 일어나도 입안이 텁텁했다. 사 놓은 담배들이 뒹굴지만 곁눈으로 보며 견딘다. 그게 하루이틀을 넘기고, 열흘을 지나도 아무렇지 않아 비로소 주변에 금연 사실을 알렸다.

얼굴이 추해 평생 사랑 한번 못한 인디언 소녀가 있었다. 나중 소녀는 '다음 생에 세상 모든 남자와 입맞춤을 하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서 자살을 택했다. 인디언 전설에 의하면 소녀가 죽은 자리에 돋아난 풀이 바로 담배라고 한다. 담배는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신대륙 발견 이후 전세계로 전파되었다.
담배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극명하다. 사랑하거나 혐오하는 쪽으로. 문명권에 담배가 등장한 이후 흡연자와 비흡연자의 대립은 끝이 없다. 영국의 탐험가이자 시인인 월터 롤리 경은 애연가였지만 담배를 끊지 못해 제임스1세에 의해 처형되었다. 역사상 가장 난폭했던 혐연가인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무라드4세는 변장한 다음 거리를 시찰하여 직접 흡연가를 적발하여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삼만여 명을 참수한 적도 있다. 금지할수록 강렬해지는 게 욕망이다. 프로이센 국왕으로 등극한 프리드리히 빌헬름4세가 시민혁명을 일으킨 성난 민중을 진정시키기 위해 특사를 파견했을 때의 요구 사항 세 가지가 헌법 개정과 검열 폐지, 그리고 공공장소에서의 흡연권 보장이었다.
담배라면 치가 떨린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에게 흡연할 권리를 달라고 요구하는 사람도 있다. 해악이 아무리 널리 알려지더라도 흡연자 수는 언제나 일정 수준을 유지한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담배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은, 작심삼일일지라도 새해 들어 누구나 한 가지 작정을 하게 된다. 아무쪼록 결심한 일이 개인적이거나 하찮은 일이라도 성취하여 다음에 만족한 웃음을 짓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나야말로 어느 날 담배를 끊은 것밖에 작정할 일이 없어 걱정이다.










Stefan Pintev, Flying To The Rainb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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