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오월 초록 안부

*garden 2014. 5. 21. 10:26




봄소풍을 가자는 기별이 왔어요. 적조했다며, 몇몇 친구가 조심스레 참석을 종용합니다. 미증유의 세월호 참사로 자중한답시고 진작 잡아놓은 행사도 두어 건 취소한 다음입니다. 확답을 하지 못한 채 차일피일 날짜만 흘려보냈습니다. 한낮 기온이 이십여 도를 거침없이 오르내립니다. 파릇파릇하던 잎이 하룻새 무성해졌습니다. 여름인 듯한 봄이 그렇게 끝납니다.
엊그제 친구들 방에 가보니 소풍 사진이 잔뜩 올라와 있네요. 한이틀 전부터 눈이 침침해 오랫동안 들여다볼 수 없지만 스크롤을 내리며 꼼꼼하게 살펴봅니다. 나이가 들어 어느새 초로의 티가 완연한 채로도 어릴 적처럼 서로 이름을 부르며 손도 잡았다가 카메라 앞에서 어색한 포즈도 취하고, 구부러진 가지가 일품인 소나무 등걸 아래 둥그렇게 쪼그리고 앉아 어줍잖게 소줏잔도 기울이는 모습. 듬성듬성한 머리칼과 주름진 얼굴, 하나둘 빠진 이를 금니로 채우고서도 크게 입 벌리고 웃는 순박한 모습들을 보며 한탄합니다. 아, 인제 우리는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왔구나 하고. 용케 예전 기억을 떠올려 걸핏하면 찾지만 차츰 보이지 않는 얼굴과 퇴락해가는 상대 모습을 자기인양 여기며 먹먹한 시간을 견뎌야 합니다. 전번 가을에는 운동회를 했지요. 뙤약볕 아래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게 쉬운가요. 그게 빡세다고 다들 손사래를 쳤나 봅니다. 그래서 소풍을 기획했겠지요. 대절한 버스에 실려 훌쩍 떠났다가 돌아오는 간편한 여정. '여기는 어때?', '저기가 더 나아!' 등 의견을 내고 설왕설래하며 와글거렸겠지요. 와중에도 누군가는 친구들을 위해 스티로폼 박스 안에 먹거리를 바리바리 싸서 출발했나 봅니다. 해변을 배경으로 어깨를 곁고 주먹을 쓰는 건달들처럼 찍은 남자들, 얼짱각도로 엇비슷하게 어깨를 잡고 나란히 서서 찍은 여자 친구들 사진을 보다가 웃었습니다. 웃다가 그만 눈물을 왈칵 쏟았지요. 혹여 사무실 안 누군가 눈치챌까봐 안경을 벗고 닦을 수도 없었습니다.
친구여, 좋은 시절이 아니어도 그렇게 한세월 살아와서 다행입니다. 깨복쟁이 친구로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이 꿈만 같습니다. 일상에 빠져있다가도 문득 과거로 돌아가는 때가 많은 우리입니다. 살이가 그만큼 힘들어서일까요. 저번 양재동에서 친구 아들 결혼식에 참석한 그대들 얼굴을 떠올립니다. 축하해주러 왔다며 주례말씀까지 다 듣고 식당으로 내려오는 여자 친구들이 귀엽기만 했습니다. 그대들과 친구였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행복합니다. 지나온 시간보다 앞으로가 행복하다고 장담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부디 살뜰한 즐거움과 웃음으로 채워지는 때이기를 바랍니다. 함께하지 못해도 친구이기 때문에 늘 그대들 얼굴을 떠올리는 제가 오월 숲에서 풋풋한 초록 향기를 담아 오랜만에 안부를 전합니다.












Forever(Ocar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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