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빗장

*garden 2014. 6. 3. 06:02




웬 사람이 이렇게 많을까. 마치 온 도시 사람이 쫓아나온 것만 같다. 북적이는 거리, 한눈 팔면 부닥치기 일쑤여서 조마조마하다. 지하도 계단을 내려가는 중에 옆에서 낯선 여자가 갑자기 튀어나와 발이 뒤엉켰다. '아차!' 하는 순간 중심을 잃고 굴러 떨어진다. 여자가 나와 엎치락뒤치락한다. 계단을 오르내리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홍해가 갈라지듯 길을 열어 그야말로 거침없다. 아아,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더니, 우리 말고 떨어지는 게 한 가지 더 있다. 내 발을 걸어뜨린 처녀가 종이가방을 들고 있었는데, 안에서 빈 양은 도시락이 쫓아나와서는 같이 구른다. 계단 중간쯤에서 뒤엉킨 생면부지의 여자와 간신히 멈췄을 때 뒤따라 온 양은 도시락이 '딸그락 땡그렁'하고 마지막 소리를 냈다. 놀란 사람들 눈길 속에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차림새를 떨고 간신히 일어났다. 상대를 탓할 겨를도 없이 창피하다. 어서 벗어나야지. 흩어진 양은 도시락과 뚜껑을 주섬주섬 챙겨 낭패해 입을 꼭 다문 여자에게 준다.

비가 오면 무엇을 떠올리는가. 우산이라고?
프랑스 여성들은 우산보다 레인코트를 떠올린다고 한다. 그게 우산살이 거리를 오가는 이의 눈을 찌른다든지 위험스러워 자제하는 면도 있지만 우산을 들면 일단 손이 제약되는 게 싫어서이다. 혹은, 패션 레인코트를 뽐내고 싶은 욕망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도 외출시 손에 뭔가 들고 나서기를 질색하는데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아침 출근 시각 앞에서 어정거리는 여자는 핸드백에, 종이가방에 물병까지 쥐고서는 신형 넓은 스마트폰 화면에 눈길을 두고 걷는다. 지하철 역 개찰구에서도 바로 들어갈 수 없다. 지갑을 꺼내느라 늑장을 부려 뒤에 있는 이를 짜증스럽게 만든다. 어쩌다가 그녀와 한 전동차에 올랐다. 빈자리 두 개가 났는데 냉큼 앉아서는 들고 있던 종이가방을 빈자리에 터억 걸쳐 두었다. 앉을 수가 없다. 설마해도 치우지도 않고. 그 바람에 나말고도 앉으려던 이들이 복잡한 통로에 멀뚱하게 서있다. 뭐라고 할 수도 없어 묵묵히 쳐다보고만 있다.
헌데 의외로 그런 사람을 종종 볼 수 있다. 전동차에서 화장을 고치는 아주머니를 보았는데, 옆 빈자리에 비닐 봉다리를 두어 개 올려두었다. 누군가는 앉으려다 말고 포기하고, 누군가는 빈자리를 보고 쫓아왔다가 다음 칸으로 옮겨가는 동안에도 아랑곳없이 화장에만 열중하는 아주머니. 두어 정거장인가 지나서 허리가 굽은 할머니 한 분이 나타나 가까이 와도 봉다리는 치워지지 않았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할머니는 애초에 봉다리 따위는 눈여겨볼 겨를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다짜고짜 봉다리를 깔고 앉을 참이었는데 그제서야 화장하던 손길을 멈춘 아주머니가 잽싸게 자기 물건을 치웠다. 새빨갛게 립 그로스를 칠한 입술을 깨물며 눈 흘기는 표정이라니.
결혼식에서 주례가 선언한다.
'이 결혼에 이의가 있으면 지금 분명하게 말씀하시고, 이후에는 영원히 침묵하십시오!'라고.
술자리에서 친구가 소리친다.
'야야, 그걸 그냥 둬? 나 같으면 어휴.'
말의 맥락이 주례선언과 닮아 우습다. 자고나면 들리는 사건 사고 뉴스. 밖으로 통하는 문이 없는 방에서 우리 모두가 불안하다. 수습과 대책을 요구하느라 떠들썩한 판국에 지방선거까지 치른다. 하지만 정작으로 우리를 다독이는 것은 출마한 사람들이 부르짖는 거창한 구호보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이웃에 대한 배려와 신뢰이지 않을까. 철지난 황사와 때이른 더위 등 난데없는 것들과의 조우가 썩 반갑지 않듯 굳이 타인을 의식하여 살 필요야 없지만 눈쌀 찌푸리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할 텐데. 부디 그대 마음을 가로지른 빗장이 아름다운 꽃대이기를 바란다. 나 지금이라도 달려가 기꺼이 풀 수 있게끔.












John Adorney, Thinking Of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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