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살아있다는 것

*garden 2014. 8. 27. 00:06




세 끼 굶은 시어미 마냥 찌푸린 하늘. 해가 구름 안에 숨어 있어도 덥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는데 일을 하려니 고역이다. 아침부터 밭에 나가 낫을 들고 사마귀처럼 춤을 춘다. 여름 내 벋은 환삼덩굴과 봄에 심은 작물 등을 베거나 뽑아냈다. 맨살이 긁히는 것은 물론 땀으로 젖은 옷이 척척 감겼다. 무나 배추 등을 심으려면 흙을 갈아엎어야 하는데 텁텁함은 말할 것도 없고, 성가신 풀 까끄라기와 풀숲을 건드릴 때마다 횡행하는 모기떼의 유난스러움도 미칠 듯하다. 헌데 저만큼 웅크리고 앉아 한 시간째 바위처럼 꿋꿋하게 밭작물을 다듬는 사람도 있어 새삼 비견되기도 한다. 요즘 호구지책으로 땅뙈기에 달라붙어 있는 이가 있을까. 단지 하는 일이기에, 살아온 일이어서 흙을 만질 뿐이다. 그래서 나같은 아마추어야 어름어름 손을 내밀지 못한다. 난 체한다거나 튀는 행동을 보일 수도 없다. 땀으로 목욕을 해도 그러려니 하며 참을 일이다. 어느새 억세져서는 고집으로만 버티다가 누운 작물같이 순하게 받아들여야지. 엉켜 아귀 찬 풀과 작물들을 갈퀴로 한아름씩 끌어모아 밭둑으로 옮겼다. 심이 죽어 마르면 어느 바람 잔 가을날 태우자. 일하는 중에도 요즘 날아드는 잦은 부음을 더듬었다. 날이 더워지며 주말 시간을 잡아먹던 결혼식 청첩장이 뜸한 대신 왜 돌아가는 분이 많을까. 개중에 천수를 누린 분도 있지만 의외로 그렇지 못한 분도 있어 안타깝다. 병이나 사고 등으로 유명을 달리한다는 것이 아직 실감 나지 않지만.
내게 부쩍 와 안기는 아이를 데리고 나왔더니, 일하는 와중에도 신경이 여간 쓰이는 게 아니다. 이제 갓 세상눈을 뜬 두세 살 아이의 천진난만한 호기심이 새삼스럽다. 거기 비해 내가 내는 소리는 뻔하다. '안돼!', '저리 가.', '가만히 있어!', '에비.' 등의 금지어가 입에 붙은 듯 줄줄 쏟아진다. 걸리적거리는 것을 모르니 이랑을 가로지르는 내 발도 붙잡고, 누운 풀도 쓰다듬고, 꽃도 만지며 껌딱지처럼 붙어 있으려고 한다. 흙투성이 손으로 밭고랑에서 비틀거리는 아이 손을 잡았다. 부드럽기만 한 감촉. 여린 박동이 느껴진다. 달콤한 꿈을 꾸던 이른 봄날의 연초록 잎사귀도 이랬다. 저절로 따뜻해지는 생명의 벅찬 느낌. 그야말로 눈뜨면 환한 희망이다. 마침 빨간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눈앞 수숫대에 사뿐히 앉았다. 무심코 아이 눈이 따라 움직인다. 습관처럼 조심스레 손을 내민다. 무어라 쫓지 않아도 아이가 숨을 죽였다. 침을 꿀꺽 삼켰다. 엄지와 검지로 다가가 잡았다 싶은 순간 큰 눈을 갸웃거리던 잠자리가 부르르 떤다. 그리고는 재빨리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옆에서 꼬마가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아이 눈에 눈을 맞추며 빙그레 웃었다. 조금 전까지 뒤집고 파헤치며 온갖 잡생각을 뿌려 놓아도 죽은 듯 널브러져 있던 밭고랑이 금새 생생하게 살아났다.





 

 

 

 








Handel, 'Saraba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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