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가을에도

*garden 2014. 9. 16. 10:07




'어떻게 지내? 오랜만이지!'
'여름도 훌쩍 보내고 가을 문턱에서야 철든 아이처럼 비로소 전화를 하니, 제발 연락 좀 하고 살자.'
'음, 머리카락도 듬성하고, 눈가 주름이 완연하네. 안경은 돋보기인가봐.'
'나야 그렇고. 네 맑은 눈과 선한 웃음을 보니 어릴 적 생각이 난다, 야.'
아닌 게 아니라 수십년 전일 게다. 무엇을 찾겠다고 쫓아나가 그렇게 헤맸던가. 얼마나 떠돌았던가. 지난했던 세월이 꿈만 같다. 그앞에 부닥쳐서는 견디기 어렵더니 지나고 보니 별 것 아니다. 백일몽을 꾸고 난 다음처럼 헛헛할 뿐. 새삼 친구의 얼굴을 본다. 구태여 연락하지 않으면 못본 채 스러질 나이이다. 얘기 중에 날아드는 전화를 몇 번 받더니, 근방에 아들이 있다면서 부르겠단다. 고개를 끄덕이고 얼마되지 않아 건장하고 잘생긴 녀석이 들어왔다. 꾸벅 인사를 하는데, 사람이 자신의 분신을 만들어 놓으려는 것에 연유가 있을까 궁금하더니 그 아들을 보자 실감 난다. 낯가림도 잠시 권하는 대로 술을 넙죽넙죽 받아 마시며 옆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녀석, 얼굴에 덮인 우울함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조심스레 까닭을 캐묻자 그예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사랑 때문에 죽을 것 같다는데.
운동을 하다가 만났는데 거의 이백 일쯤 사귀었구요. 사귄 다음 이틀에 한번 꼴로 만났습니다. 만나면 꼬옥 붙어 있었고, 못보는 날에는 당근 연락도 엄청 하여 행복했거든요. 일박이일로 여행도 두 번 가고. 아, 또 두 번 정도 싸웠는데....한번은 여자 친구가 친구들과 모임에 있다가 두 시간 정도 늦게 들어간 것에 제가 화를 냈지요. 또, 한번은 제가 새로운 직장으로 옮기게 되었고, 여자 친구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하여 만나는 횟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었습니다. 그 다음부터였지요. 이상하게 여자 친구가 변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 평소 카톡이나 전화를 하면 제깍제깍 반응을 보이던 게 어느덧 줄어들며 저를 피하는 듯 느껴지지 않겠어요. 그리고는 저의 집착이라고 여겨지는 부분이 시작되었고, 쫓아가서는 기다리다가 만나 화를 냈지요....지금 연락 안한 지 삼일이나 되었습니다. 선물도 주려고 준비해 두었는데, 휴우!
언제 연락을 해야 하고, 또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까요? 저 자신보다 더 사랑하고 아끼는 그런 사람인데.

인적 드문 산길에 낯선 외국인이 길동무를 해 앞서거니 뒷서거니하며 함께하다가 떨어지기도 했다. 그게 재미있는지 앞선 내가 자리를 잡으면 그네들도 옆에 자리잡고 앉아 손을 흔든다. 그러다가 지체하면 앞서간 그네들이 저만큼 서서 미소로 맞아주기도 한다. 이맘때면 으레 걷던 숲길에 익숙한 풀꽃들. 작년에는 고마리가 꽃몽우리 상태였는데, 날이 더워서인지 올해에는 활짝 피었다. 물봉선은 처연함이 더하고, 그늘에 숨은 닭의장풀, 꽃을 피우고 양지에 나앉은 씀바귀와 고들빼기, 간들대는 쏙부쟁이와 무리를 지어 삐죽한 여뀌도 작년 그 자리이다. 하늘을 향해 우뚝한 밤나무 아래에 서자 아람이 뚝뚝 떨어졌다. 살면서 내 삶의 향방이 왜 궁금하지 않았을까. 그때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에게도 물어본 적 없다. 내가 기댈 신조차 애시당초 없다고 여겼으므로 눈 돌리지도 않았다. 이대로 참아야지.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묵묵히 걸었다. 시선을 바로 두라고 했다. 고개를 들고 앞을 보고 걸으면 미래지향적이 되고, 고개를 숙이고 땅을 보며 걸으면 생각이 비관적으로 변한다고 하지 않던가. 동물의 세계에서 보듯 시선을 내리까는 건 곧 패배자의 자세라던가. 생밤을 깨물었다. 한여름 내 따가운 햇볕을 받아 여물고 땅의 양분을 궁글리며 부풀린 열매를 씹는 동안 달콤한 맛이 맴돈다. 그렇게 걸어가야지. 다른 수가 없다.












Omar Akram, Take my h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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