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유년, 그 다음 이야기

*garden 2014. 9. 30. 09:41




귀밑머리에 물사마귀 같은 게 잡힌다. 굳이 거울에 비쳐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의 크기이다. 어릴 적 손가락 등에 생기던 티눈을 떠올렸다. 성가시기 짝이 없었어. 섬유상피성 용종이라는 이 작은 혹은 우선 느낌부터 좋지 않다. 면역성이 약해져서인가, 나이듦의 현상이라는데. 가만, 그러고보니 가슴 가운데에도 어느 때부터 까만 사마귀 하나가 자리잡았다. 심이 박혀 있어 없애도 계속 자라나는 귀찮고도 끈질긴 존재라는 의심으로 진땀이 날 지경이다. 온전하지 못한 것이라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는데 말야. 글줄이라도 끄적이는 게 일이어서 필기구를 잡는 가운데손가락에 굳은살이 박혔다. 차를 마시거나 시간이 날 적이면 이를 뜯기 일쑤였는데, 요즘은 필기구 대신 워드로 처리하면서 그것도 한때의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그나저나 무던한 면도 있는지 어떤 사실이 인지되어도 참을 수 있을 때까지 방치해 두기도 한다. 좁쌀만한 티눈 하나로 호들갑 떨며 달려가는 것도 우습잖아. 한달에 한번 정도 머리를 깎는데 용케 이건 건드리지 않나 봐. 생각이 갈래를 치는 동안에도 앉은 채 부지런히 손을 움직여 쥐젖이라는 용종을 기어이 뜯어내곤 했는데, 생살이 찢겨 피를 흠뻑 묻힌 다음이면 딱지가 앉았다가 나중 더욱 커지는 것 같다. 악순환이 그치지 않아 봄과 여름 내 신경이 쓰인다. 건조한 피부가 갈라진 자리마다 잔뜩 돋아난 물사마귀로 고생하는 꿈을 꾸기도 했다. 정말이지, 이렇게 지낼 수는 없어. 면도기로 구레나룻을 밀다가 다시 한바탕 피범벅이 된 아침에 작정했다.
'아무래도 피부과에 가야 할까 봐.'
별의별게 다 속을 썩인다. 허긴 조선시대 세조는 종기로 고생하다가 죽기도 했다는데. 외과적으로 밑동을 자르면 아프지 않을까, 레이저로 치료하는 게 나을까. 고민하며 책상에 앉았더니 밀린 일이 산더미이다. 원고를 처리해야 하는데 그마저도 쉽지 않아 양해를 구한다.
'내일 줄게요.'
약속했으니 당연히 실행해야 하는데, 내일이 또 내일이 되어도 원고를 주지 못했다.

구절초는 하나의 꽃대에 한 송이의 꽃을 피웠다. 여름에는 다섯 마디이지만 가을이 되면 아홉 마디가 된다. 아무도 눈길 주지 않는 산길에서 홀로 고고하다. 더러 심술 부리는 갈바람에도 꺾이지 않고, 나붓한 햇살 한줌이라도 간직한다. 나를 보고 손 흔드는 수많은 꽃의 얼굴을 보다가 친근한 웃음을 기억해냈다.

해마다 다른 곳에서, 같은 구절초를 보고 온 다음 날, 습관처럼 귀 옆 용종을 만지는데 여느때 같지 않다. 꺼칠꺼칠한 피딱지를 떼낸 다음 손톱으로 긁는데 이것 봐라, 작은 혹이 흔적 없다.





 

 

 

 








George Davidson, Mariage D'Am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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