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색깔이 뭐냐?'고 묻는다.
글쎄, 말을 끊어놓기는 했지만 선뜻 답할 수 있어야지. 깊은 소가 소용돌이친다. 이 질문의 요지는 무얼까? 대답에 따라 내 성향을 알아채고 선입견을 굳히려는 걸까, 아니면 고른 색깔에 따른 심리상태를 알아보려는 걸까?
야외건물 로비에서 자전거를 등에 이고 가는 이를 보았다. 자전거 바퀴가 밝은 주황색으로 날렵했는데, 자전거 주인도 주황색 유니폼을 갖추어 입고 있다. 그때가 구월이었는데, 햇살과 어찌 그렇게 잘 어울리는지, '구월은 주황색'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싶었다. 그리고 시월이 되었다. 이 시월의 대표색상을 찾아내려고 두리번거렸지만 당최 모호하다. 면티를 즐겨 입는데, 한해가 지나면 원형이 훼손되기 일쑤여서 개비하다 보면 거의 같은 계열인 회색을 집어들게 된다. 이를 본 식구들 입이 샐쭉해진다.
'또, 회색을 골라요?'
이건 뭔 말인가. 내가 회색에 목을 매는가. 등산복은 검은색이나 청색 계열도 있으며, 야외점퍼는 아이보리 계열이며, 양복은 대개 짙은색 위주로 맞춰 입으니 굳이 어느 한쪽에 국한되어 있다고 할 수도 없다. 어느 때 초록에 눈길을 주다가는 노랑색에 빠져드는 때도 있으며, 가슴에 열정이 솟게끔 짙은 빨강으로 표지 계열을 선택한 적도 있지 않은가. 기분에 따라 장소에 따라 변할 수 있는 선호색을 콕 집어 하나로 어떻게 나타내야 하는지 난감할 따름이다.
능선에서 능선으로 이어지는 길. 내가 걸어가는 길을 바람이 열어간다. 은빛 세상에서 우러르고 휘돌아보았다. 앞길에 흔들리는 수많은 억새처럼 밭은 기침을 연이어 뱉어냈다. 길은 어느 때 걸은듯 여겨지다가도 낯설기만 했다. 단막극처럼 이어지는 꿈. 꿈에서 꿈으로 건너뛰는 길은 바쁘기만 하고 무채색으로 단순했다. 낯설게 돌아가다가도 고개를 끄덕이며 쫓아나오던 길. 캄캄한 어둠 막간에서 늑대처럼 '컹컹'대다 보면 잠을 자는지 살아 있는지 분간할 수 없다. 그래도 흔들리는 채 여기까지 왔으니.
Secret Garden, Illumin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