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이만큼 살았으면

*garden 2014. 10. 6. 11:30




여긴 십수 년째 재개발을 하네맙네 운만 무성한, 몇 안되는 서울 도심 금싸라기 땅. 근방에 대형마트가 있어도 시장통을 기웃거리는 이들은 습관처럼 찾아든다. 고기를 솜씨 있게 다질 줄 아는 살집 넉넉한 아주머니 싹싹한 목소리도 들리고, 떡판을 '쿵' 소리나게 내려놓는 머리에 두건을 쓴 구렛나루 아저씨 듬직한 동작도 보인다. 내가 이십 년째 드나드는 전집은 모임이 있을 때면 사람들과 쫓아가 아지트 비스무리하게 되었다. 시절이 바뀌어 흑산도횟집은 예약 위주로 저녁 한나절만 문을 연다. 그 앞 옷가게에 아주머니가 무릎담요를 덮고서는 햇사과를 성퉁성퉁 잘라 먹고 있다. 사람이 북적여도 시장 한가운데는 동선이 끊어져 외려 한적했다. 음습한 차일 안에서 고단한 하루를 지난 사내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따로인 채 함께 치유의 술을 들이킨다. 원래 입술보다 훨씬 작게 보이도록 가운데만 빨갛게 화장한 오동통한 아주머니가 선술집을 한다. 오늘은 홍어를 갖다 놓았다는데, 들어서면서부터 꼬릿한 그 냄새에 질려버렸다. 아무투데이인가에서 칼럼을 쓰는 내 친구가 진작 와 있는 고수들과 눈인사를 한다. 와중에도 다른 손으로 의자를 끌어당겨 앉으며 운을 뗀다.
'시월 이십육일 경에는 내가 죽어뿔라네.'
'와? 슬픈 세상이 보기 싫어서 그러나.'
'아니, 조울증이 와서 이기질 못했는데. 인자 조증은 없지만 울증이 더 못견디겠네.'
'그래도 차마 접기야 아깝잖아. 미련도 있을텐데.'
'그 미련 같은 걸 내사마 지워가는 중이지.'
'생각이야 누구나 뻔하지. 어쩔 수 없이 끈을 잡고 있는 게 많아서 말씨.'
'딱 이만큼 살았으면 됐어. 주제 넘게 여기저기에 연락하지마!'
'꼭 연락하라는 압력 같네. 퇴물들 술자리에서 나눈 얘기를 녹음기로 틀어봤자 누가 관심 있대?'
껌정이 앉아 을씨년스러운 형광등이 깜박거린다. 어떤 심각한 얘기에도 관심 둘 이 아무도 없다. 누가 죽는다고 소리친들, 하늘이 무너졌다고 한들 세상은 아무렇지 않다. 험한 꼴을 한두 번 겪었어야지. 동그란 세발의자에 엉덩이를 동그랗게 얹은 아주머니가 동그란 입술을 꼭 다물고 꼬박꼬박 졸고 있는 사이에 술잔을 기울이던 누군가 성큼성큼 걸어가 냉장고 문을 열었다. 막걸리 한 병을 꺼낸 다음 '탁' 소리가 나게 닫자 잊었던 홍어 냄새가 불쑥 일어났다. 아주머니가 게슴츠레 눈을 뜬다. 팔장을 풀며 웅크려서 뭉쳤던 자세를 조금씩 이완시켰다. 새빨간 입술이 세로로 크게 열리며 양팔이 번쩍 들렸다.












Chris spheeris, Allu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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