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꾸라지가 가득한 동이 안에 메기 한 마리 넣어두듯 이맘때의 태풍은 우리를 바짝 긴장하게 만든다.
'일기예보가 아직도 이 모양이야! 처음에는 중국쪽으로 갈 거라더니 서해로 곧장 올라온다네.'
'13호 태풍 할롱도 바로 아래에 있다는데.'
바깥 활동이 잡혀 있어 일기예보에 눈길을 줄 수밖에 없다.
'어렵게 잡아 놓은 약속을 어떡할까?'
그러거나 말거나 작정한 대로 산에 오를 참이다. 집과 사무실만 오가거나 틀어박혀 있었으며, 연일 꺾이지 않은 폭염으로 그렇찮아도 무기력증에 잠겨 있었다. 나중에야 꽃의 이름이라는 제12호 태풍 나크리(NAKRI)가 소멸되었다는 뉴스를 들었다. 잘된 일이다. 가뭄이 심했는데 태풍 영향으로 사흘 내내 비가 내려 대지가 촉촉해졌다. 풀섶을 지난 바짓단이 축축하다. 진작 비뚤어지거나 척박한 바위 틈에서 자라거나 병약한 나무들이 저절로 늠름하게 자리잡은 숲을 새삼 둘러봤다. 운무가 자욱하게 떠다닌다. 솔잎이 한뼘이나 재인 바닥을 밟는 내내 푹신한 느낌이 전해진다. 우뚝한 소나무나 전나무가 하늘을 가린, 여인네 아랫배처럼 두두룩한 구릉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습한 기운이 끈적이며 달라붙었다. 땀으로 목욕이라도 한듯 등짝 옷이 달라붙어 있다. 태고적 적막으로 잠긴 숲에서 혹여 생명의 기척이라도 발견할 수 있을까 하고 귀를 기울였다. 두꺼비가 엉금엉금 발 아래를 지났다. 이곳 사람들이 대부산이라고 부르는 어비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도 아닌 길인데, 가파르게 치솟아 오른 다음 수백 미터나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야 해서 등산로로는 '꽝'이라 했다. 빗물이 모여 속살거리는 실개천에서 손을 씻었다. 울렁증이 일 때면 오래 전부터 가슴에 들어와 사는 메기가 요동을 치기도 했다. 비가 와도 이렇게 덥다니. 한반도 기온이 바뀌었다고 난리법석이다. 그래서인가, 익숙하다고 여긴 더위가 낯설 지경이다. 몸이 견디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바람이 서성이는 느낌, 무언가 목질을 갉는 소리, 잎새 뒤에 숨어서 파르르 떠는 꽃의 자태 들을 오롯이 받아들이려고 애를 썼다. 호젓하다 못해 걸음이 무료하다. 캐스 엘리옷(The Mamas & The Papas)처럼 어깨를 건들거리며 California Dreamin'을 흥얼댔다. 씩씩하게 시작한 내 목소리가 웅얼웅얼 깔리다가 잦아들었다. 남미쪽 페루와 칠레 연안에서 발현되는 엘니뇨와 라니냐처럼 자연이나 물질 등에는 일정한 법칙이나 현상이 존재한다. 그게 장소에 국한될 수도 있고 아니면 드넓게 영향을 끼치기도 하며, 일시적이거나 장구한 세월에 걸쳐 반복되는 현상으로 펼쳐질 수도 있다. 이를 체계화하지 못하여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할 뿐이다. 이런저런 세상 법칙을 온전하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시절, 어머니는 늘 내 가슴 속 화를 가리키며 다독이셨다. 계곡을 타고 내린 물길이 곳곳을 휘돌아 나갔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격렬함으로 쫓아나가 휩쓸려야 하는 때, 내 속 메기는 왕성한 식욕으로 눈에 보이는 대로 덥썩덥썩 물기 일쑤였다. 스스로를 주체하고 건사하기가 쉽지 않다. 텁텁함을 견디며 개천도 지나고 너덜지대를 넘어 가파른 경사지에 올라섰다. 비에 젖은 땅이 무르다. 바닥 흙이 무너져 내린다. 넘어진 나뭇가지를 밟으면 미끄러워 더 위험했다. 이태 전 산에서도 그랬지. 아무도 없는 숲, 움직이는 건 나밖에 없다. 가도가도 연이어 나타나는 언덕과 구릉, 줄지어 선 나무들이 나를 맞았다. 부대껴 덩달아 흔들리던 소동이 가라앉는다. 평안하지 않을 때 안달하지 않기. 실패의 기억을 하나씩 떠올리며 움츠릴 때마다 메기도 몸을 도사렸다. 설마해도 사실이다. 바라지 않아도 일이 이루어지는 게 만족스럽다면 얼마나 좋을까. 헌데 만족스러운 결과도 지나고 나서 곰곰히 씹어보면 마음에 들지 않는 때가 많다. 비가 거세지면 커다란 입을 벌리고 차오르며 미끈한 몸을 꿈틀거리던 메기가 어느덧 자취도 없다. 이렇게 되기를 바란 건 아니었는데. 포악한 육식성의 종말이 허망하다. 빗물이 흘러내려서는 땀과 함께 뚝뚝 떨어졌다. 버섯의 눅눅한 향과 비에 젖은 꽃이 흔들리는 숲에서 제갈량의 팔진도에 든 듯 종일 헤어날 수 없었다.
Ralf Bach, Loving Ce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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