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버 탓인지 지속적으로 열어둔 컴퓨터 화면이 오후 무렵이면 흔들린다. 그림이나 사진이 달랑 느낌표만으로 덮이기도 하고.
'이거야, 원!'
MS의 윈도7 운영체계지원 종료 때문인가. 인터폰을 들었다가 놓았다. 오죽 더워야지. 억지로 나까지 쫓을 필요야 없어. 목소리 큰 사업부 책임자를 떠올렸다. 뭔가 확인하려다가 버벅거린다면 참을 수 없어 인터폰을 하겠지. 이마에 핏대를 세우다가 들고 있는 수화기를 휘두르며 침을 튀긴다. 깐깐한 정보지원팀 이 부장은 웃음으로 얼버무리며 쩔쩔맬 게다. 눈을 질끈 감았다. 침침해져 안경을 벗고 정수리를 꾹꾹 눌렀다. 입맛을 다시다가 혀가 닿은 곳의 허전한 감촉을 떠올렸다. 컴퓨터 화면처럼 흔들리는 듯한 진동을 느낀 게 엊그제 오후. 국수를 먹는 중에 이가 부러졌다. 바지런한 칫솔질 때문인지 잇몸과 닿은 부분이 닳으며 가늘어져 불안하던 터였다. 다행히도 삼키지 않은 법랑질의 이 조각을 뱉어내 이리저리 살펴본다. 이제까지 내게 피와 살이 될 영양분을 짓찧고 씹던 존재의 하잘것없는 결말이라니, 난감하고 허전하다. 저번에 만난 친구는 된장찌개에서 두부를 건져 먹다가 이가 빠졌다더니, 단단한 걸 씹지 않아도 이렇게 빠지거나 부러질 수 있다는 게 실감난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잘 웃는 위층 나은이가 그저께 앞니가 빠져 있어 우스개삼아 놀렸다. 제 엄마 짧은 치마자락을 붙들고는 숨던 나은이에게 이제 내가 놀림 받게 생겼다.
어릴 적 젓니를 갈 적에 실을 감아 빼던 일이며, 문고리에 붙들어매고는 뺀 기억도 떠올랐다. 그런 풍습도 인제 없지만 아랫니가 빠지면 지붕으로, 윗니가 빠지면 부뚜막이나 마루 아래 넣어두기도 했다. 당시 들끓던 쥐가 빠진 이를 어떻게 할 거라는 기대심리가 그렇게 반영되었다고 한다. 평생 이가 자라는 설치류의 이빨처럼 아이들의 이가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데서 기인한 풍습이다. 이를 던지며 '까치야, 까치야. 헌 이 줄게. 새 이 다오'라는 가락을 무심코 흥얼거리기도 했다. 예전에는 까치를 갓치라고 불렀다는데, 이때 '새로운'을 뜻하는 '갓'과 '이(齒)'가 동음이어서 '갓치가 갓 치를 몰고 온다'고 여겨 까치와 이의 생성을 결부시키기도 했다. 그나저나 기운 달이 신생의 달에서 차츰 차오르듯 내게 이가 새로 날 리는 없다. 의치라도 박고 또 한세월 견뎌야 한다면 그도 당연히 받아들여야지.
Chet Atkins & Mark Knopfler, Imag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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