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고기를 '닭고기'라고 말하는 사람은 식구 중 나밖에 없다. 아이들은 '치킨'이라고 뭉뚱그려 말하지도 않는다. 프랜차이즈 이름에 따라 원하는 부위를 콕콕 찝어 말하는데 듣기에는 얼떨떨하다.
'그래, 원하는 것을 시켜먹어야지. 못먹으면 얼마나 억울하겠니?'
입맛이 동할 때마다 치킨을 소비하는 아이들. 개중에 맛없는 치킨이 배달되기라고 하면 묵히다가 버리기도 예사이다. 그걸 탓하면 잔소리가 된다.
시장 길목에 치킨점이 문을 열어 그앞이 인산인해이다. 사람들이 이렇게 치킨을 좋아하는가. 놀라며 인파를 피해 돌아가는데 그 안에서 빠져나온 눈이 커다란 여자와 딱 마주쳤다. 누구지? 얼결에 인사를 받고 갸웃한다.
'낯이 익은데 전혀 기억나지 않으니.'
다니는 곳이라야 회사 근방 식당 뿐이니 이리저리 머리를 굴렸지만. 그러다가 몇 개월이 지난 다음에야 우연히 생각해냈다. 생글거리며 내게 인사하던 모습에 걸맞지 않게 성격이 불칼 같다. 비빔밥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 주인인데, 손님에게는 친절하지만 일하는 아주머니에게는 가차없다. 잘 못하면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도 타박을 일삼는다. 얼근설근 일하는 폼을 보다가 언성을 높여서는 직성이 풀리지 않아 아이를 쫓듯 거듭 꾸짖어 면박당하는 상대가 무안하다. 그게 정나미가 떨어져 발길을 끊었는데, 공교롭게도 회사 동료가 거기로 이끈다. 그집 검은냉콩국수 맛이 근방에서 제일이라는데. 그날 메뉴는 진작 콩국수로 정했기에 떫떠름해도 들어간다. 애써 만든 음식을 사람 듣는 데서 품평할 수는 없다. 다만 그집 음식이 유난히 짜다고 여겨 가지 않는데 반해 동료는 뻔질나게 드나든 모양이다.
걸죽한 콩국수에 따라 나온 밑반찬에 저분질할 겨를이 없다. 와중에도 주인 아주머니가 지나다 말고 이것저것 권한다. 고개를 끄덕이고는 젓가락으로 들어올린 국수가락을 들이킨다. 묵묵히 우물거리는데 다시 뒤돌아선 아주머니. 상 위 반찬 그릇을 들썩여 내앞에 놓는다.
'열무김치가 참 맛있는데....손을 안대네요.'
무심코 열무김치를 집어 씹었다.
아아, 뜨거움을 삭인 여름 열무. 이맘때쯤 찬거리를 만지는 엄마손은 채전밭 열무에 대한 기대치가 달아올라 과한 듯하다. 어머니도 그랬다. 상에 오르는 게 끊이지 않아 가끔 짓물러지거나 아니면 햇볕 아래서 버틴 질기디 질긴 열무김치를 먹어야 할 때도 있었다. 아니다, 시어서 먹기 힘든 데도 권하던 당신은 정말 바빠서 제때 음식을 만들 수 없는 지경이었는지도 모른다. 지나고보면 기억 속 맛이란 그렇고 그런 애환까지도 곱씹게 만드는 걸까. 맵싸하고 개운하며 서근서근 씹히는 맛의 숙성된 열무김치. 어쩌면 이 여자는 지나칠 정도로 성향까지 닮아 당신을 일깨우는지!
Bert Kaempfert Orchestra, Plaisir d'Am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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