發憤抒情

그 감나무 아래 서면

*garden 2014. 10. 21. 10:06




어른들이 촌수를 따져 서열을 정해 주었는데, 나이가 어리거나 동갑나기여도 아재나 이모라기에 어안이 벙벙하다. 호칭이 쉬이 나올 수 있어야지. 또, 나이가 많아 어른인데도 조카뻘이라며 하대해야 한다니 우습기도 하다.
북새통에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채인다. 그도 그럴 것이 수업을 하다 말고 쫓아오신 어머니 손에 다짜고짜 이끌려왔으니. 진주할머니를 위시하여 두루 인사를 드렸다. 호롱불 아래서 늦은 밤까지 드높은 웃음소리와 두런거림이 그치지 않았다. 친인척들과 아무렇게나 뒤섞여 잔 다음 구석자리에서 눈을 떴다. 봉창이 어둑한 데도 아침 준비로 부산한 바깥. 아궁이 불이 지펴지고 가마솥이 달아올라 밥 냄새가 모락모락 난다. 입맛을 다시며 뒤뜰 감나무 아래 쫓아가서는 올려다보는데 뒤쫓아온 계집애가 말을 건다.
'부지런도 하네. 하마 일어나고. 잘 잤나?'
'으, 으응!'
'야 봐라, 어젯밤 어른들이 내가 이모라 안카더나? 이모라꼬 한번 불러봐라.'
겨우 한두 살 터울일까. 단발머리 아래 까무잡잡한 피부에 반짝거리는 눈이 여느 아이답지 않다. 똑바로 쳐다보는데, 눈을 마주칠 수 없다.
'와? 이모라 부르기 싫나?'
난데없이 이모라니, 당돌한 것도 거슬리고, 채근받는 것도 싫다. 언제 봤다고 이러는가. 대꾸하기 난처하여 묵묵부답으로 물러서도 슬금슬금 따라다니며 쫓는 건 무언가. 어물쩡 넘어가려고 해도 기어코 대우를 받겠다는데, 아침 내내 술래잡기하듯 피하고 찾아낸다. 밥상이 달라 멀찌감치 앉은 것에 안도했을 지경이다. 헌데 밥을 먹고 나자 다시 눈앞에 빼꼼 내비치는 계집아이를 보며 질겁한다. 맞상대를 해야 하나. 억지로 쫓기를 계속하면 발길질이라도 나갈 뻔했는데, 내미는 손에 감 하나가 얹혀 있다.
'이것, 아랫목에서 삭힌 감인데 맛있다.'
그렇찮아도 나뒹군 감을 주워서는 두어 번 이로 자국을 내기도 했다. 가지마다 오밀조밀한 감은 떫기가 이루 말할 수 없어 덧정없다. 개수대에 이물질이 끼듯 목구멍이 콱 막혀 딸꾹질하듯 입맛을 게워내고 헛트림을 거듭했다. 어떻게 알고 감을 가져왔을까. 얼결에 받아 손에 굴리며 매끈한 감촉을 느낀다. 온기가 담겨 있다. 식전 내 '이모'라 부르라며 쫓던 계집애가 이번에는 꼭 쥐어준 감을 먹어 보라며 빤히 쳐다본다. 그래, 한결 눅은 눈빛이 좋다. 선뜻 이모라고 부를 수야 없지만 감이야 먹지 못할까. 간질간질한 눈길을 피해 성퉁 베어 물었다. 입안에서 으깨진 감이 달콤한 맛으로 변해가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했는데, 표정만으로 알겠다는 듯 이모가 되돌아서 뛰어갔다. 삭힌 감을 다시 내오겠다며. 깡동치마 아래 가냘픈 다리가 아침상에서 괴기 반찬을 오가던 젓가락처럼 날렵하다.







 

 








Jethro Tull, Ele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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