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어귀 싸전을 무심코 지나쳤다. 가게 앞에 몰지각한 이들이 함부로 차를 대기도 한다. 이를 막으려고 배치한 커다란 화분 서너 개. 거기서 고추나무가 자라기도 하고, 한여름에는 봉숭아 씨앗이 싹트기도 하지만 대개 근방을 활개치는 비둘기들이 차지했다. 싸전 주인이 심심하면 알곡을 뿌려 두는데, 평화의 전령이라는 녀석들이 그걸 저만 차지하겠다고 화분을 링 삼아 부리로 상대를 쪼며 쌈박질을 일삼았다.
밤새 창이 덜컹거렸다. 가을을 지우는 비가 뿌려지고, 바람이 허공을 휘젓기도 한다. 이른 아침, 나뭇잎들이 길 위를 몰려다니며 와글거렸다. 어느새 맨몸으로 긴팔을 치켜든 나무들이 우스꽝스럽다.
'왠일로 싸전 문이 닫혀 있네.'
건너편 상가 처마에 나란히 앉은 비둘기들이 머리를 기웃거린다. 시계포와 양품점을 지나 일찍 문을 연 커피점에서 풍겨나는 알싸한 커피 향을 음미하며 서 있었다. 맞은편에서 길을 건너온 영감이 엇갈려 간다.
'낯익은데, 누구더라!'
아하, 아직도 담배를 끊지 못했구나. 필터를 질겅질겅 씹듯 피우는 아저씨. 가래침을 거칠게 뱉기도 해 눈쌀을 찌푸리는데, 지금 보니 의외로 덩치가 작다. 젊었을 적에는 쌀가마니를 번쩍 들어올리기도 했을 뼈대이지만 세월에 장사가 있나. 바깥에서 보니 영락없이 꾸부정한 노인네 모습이다. 그년이 말도 없이 보따리를 싸서 없어져도, 장성한 아들 녀석이 성에 차지 않은 일이 있어 한댓발 입 내밀고 있어도 눈 한번 부라린 다음 싸전으로 달려가기 일쑤였는데. 오늘은 이리 늦어서야 비끌비끌 쫓아간다.
'이런 적이 없었는데 말야, 벌써 겨울이 저만큼이니.'
Norman Candler, If I only Had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