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상능선에 오르면 유도를 잘한 오촌당숙이 생각난다. 기골이 장대해 앉은 모습만으로도 듬직했다. 일억육천만년 전에 생성되었다는, 화강암 바위가 층층이 포개지고 솟아 거칠 것 없는 의상능선이 S자로 꿈틀꿈틀 돌아나간다. 의상 마루금에서 광활한 김포평야와 경인지역 빼곡한 아파트 군을 지쳐오는 거대한 북서풍을 마주하자 정신이 번쩍 든다.
'이번 겨울을 잘 넘겨야지.'
장갑 속 곧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되뇌었다.
사방 조망이 훤해 걷는 동안 마음 한곳을 어지럽히던 근심이 온데간데없다. 오묘한 바위 형상을 보면 굳이 미로나 피카소 등 거장의 작품을 찾을 필요가 없다. 암릉에서 헤맨 팍팍한 한나절. 오른 길이 등뼈처럼 도드라진 능선이었다면 내려오는 길은 내장 속처럼 깊고 어둡다. 한겨울 북한산 계곡이 때아닌 적막감에 가라앉아 있다. 한 열흘 영하 아래쪽에 머문 기온 탓일까. '과거는 거기 서 있고, 현재는 화살처럼 날아가며 미래는 주저하며 다가온다'고 했다. 나는 어디에 속해 있는지 모호할 때가 많다. 대체 운명을 틀어쥔 신은 어디에 있는가. 코뚜레에 꿰인 소처럼 허적대며 삶을 이을 수야 없지. 뒤안길을 더듬듯 느릿느릿 걸었다. 더러 시계추처럼 일깨우는 소리 있어 뒤돌아보면, 겨울이 이제 시작이라는 것을 말하는 듯 서늘한 그림자가 주춤거린다.
Afshin Toufighian, Prayer Of 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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