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garden 2014. 12. 16. 09:32




'지하철로 간다'며 애띤 목소리로 전화한 옆자리 여자 아이. 스마트폰에 눈길을 두다가 꾸벅거리더니 긴 생머리가 내 오른팔에 늘어뜨려지도록 모르고 있다. 그게 이제 머리와 어깨까지 넘어와 기댄 무게감이 점점 더해진다. 물리치려다가는 참았다. 버티려니 힘이 주어져 벌서는 기분인데, 잦아드는 숨결이 안쓰러워 기꺼이 그냥 가기로 한다.
요즘 장안에 회자되고 있는 드라마 '미생'은 제목 자체로도 불완전한 낱말이다. 처음부터 온전한 게 어디 있겠냐만은 뿌리 내리지 못해 둥둥 떠있던 시절을 어느새 까맣게 잊었나. 따지고 보면 나도 한때 날개 없이 날아오르려는 유충에 불과하여 내내 버둥거리는 게 일이었는데 말야. 종일 원고에 얼굴을 파묻고 있으면 생각 한켠에서부터 사각사각 갉아먹기 시작하는 걱정벌레들로 몸살을 했다. 끼니만으로 살아내기에는 안타까운 때, 그마저 원만치 못해 현실을 돌아보면 암울했다. 연말에 사람들과 조촐한 모임이라도 가지려다가 급기야 집에서 타박만 맞지 않았던가. 이런저런 일을 접어두고 호젓한 곳에라도 가 어지러운 심사를 달래겠다는 작정은 언감생심 꿈도 못꿀 일이다. 허술한 바짓단을 타고 오르는 냉기를 잊고 있다가 몸을 떨었다. 저만큼 가열되어 달아오른 연탄난로 주변 사람이야 곤욕이어서 곧잘 아래쪽 통기 불문을 틀어막지만 우풍이 심해 꼭꼭 봉해 둔 사무실은 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신혼 중인 새댁 미스 고는 겨우내 감기를 달고 살아 코맹맹이 소리를 냈다. 오후 무렵이면 냉기가 가셔 그나마 나았는데 반면에 연탄 가스 때문인지 두통으로 머리가 지끈거렸다.
낫살이 얼추 비슷해 죽이 맞는 구 선생과 윤 선생은 종종 밤 늦게까지 함께 있기도 했다. 내가 한잔 샀고, 그게 모자란다며 구 선생이 이차를 쏘자 윤 선생도 보란듯이 삼차로 이끌었다. 휘황한 종로 거리를 흥청망청대며 사내 셋이 어깨동무를 하고 호기롭게 외쳤다. 오늘이야말로 좋은 날 아니냐고.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종일 자음과 모음을 잇고 헤쳐뜨리기를 얼마나 했던가. 말의 숲을 벗어나선 말을 지겹게 생각하여 말일랑 뿌리치고 팽개쳐 잊을 법도 한데 그러지 못했다. 싸구려 술에 절어 점점 되지도 않을 말을 키우고 흩뜨리며 그게 세상에 뿌리를 내리는 방법이라고 자위하는 양 허우적대기 일쑤이다.
곧잘 장단을 맞추며 술자리에서 즉석 노래판이라도 벌어지면 남자들은 대개 차중락이나 배호 레퍼토리를 들고 나왔는데, 윤 선생이 배호의 '마지막 잎새'를 썩 잘 불렀다. 다음 날, 해장도 못해 부썩한 낯빛인 윤 선생이 내 앞에 와 섰다.
'잘 들어가셨지요?'
'네, 그런데 어디 들를 데가 있다고 하며 가지 않았나요?'
'그게...필름이 끊어져서는, 간 곳도 기억나지 않고. 오늘 아침에 보니 월급이 봉투째 보이지도 않네요.'
'저런!'





 

 








Werner Muller, Aranjuez Mon Am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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