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조무래기들은 어른들 세계를 동경하듯 엿보고 읊었다. 우성이 형 이야기도 나왔다.
'강원도 어느 탄광에 가 있다지!'
살이가 여의치 않아 몸뚱어리 하나로 쫓아가는 곳. 그야말로 막장이다.
아침 나절 비 오고, 바람도 대중 없이 횡행하는 중에 해가 반짝이기도 한다. 여우비라 부르기엔 전혀 낭만적이지 않다. 바람이 쌀쌀하여 옷깃을 여몄다. 막장으로 가는 길이어서인가. 늦가을 철암역 건너편을 에워싼 시커먼 산 벽과 어스름이 지난 시간처럼 묵직하다. 산등성이 언덕받이에 수탉 벼슬 같은 맨드라미가 마지막 자존심을 세우고 있는 길을 지나온 등짐장수. 열린 가게 문을 기웃거리는데, 두어 마디 언질을 놓아 반응이 없으면 냉큼 돌아선다. 자박자박 떼는 발걸음이 분주하다. '1리(厘)를 보고 5리(里)를 다툰다'고 했지만 그건 옛말. 한양당구장이나 젊음의양지나 진주성 간판도 아랑곳없고, 제일당, 궁원다방과 고려체육관, 대성사, 붐비네, 산울림양품점 앞을 거침없이 지나치는데 아뜩하다. 사실 이곳은 다 비어있다. 일행 중 고향이라며 얼굴이 활짝 핀 시인은 어머니 얘기를 꺼냈다. 폐병을 앓아 얼굴이 핼쓱해도 그게 더 고왔다는데, 아닌 게 아니라 시인의 웃는 모습이 화사했다. 덧붙여 근방 장성병원을 가리키며 진폐, 피폐환자로 늘 들끓었다고 했다. 차를 세우자 마자 산지사방 흩어지는 일행. 지난 시간의 편린을 들쑤시는지 눈에 띄지도 않았다. 소슬한 역전을 혼자 어슬렁거렸다. 닥지닥지 붙은 콘크리트와 함석 구조물. 사는 사람 없이 해지고 낡은 흔적 뿐인 곳. 사이 어두컴컴한 곳을 들여다보면 하나같이 텅빈 사방 여섯 자 정도인 쪽방은 지자체에서 체험관으로 바꾸는 중이었다. 살길을 모색하는 것이겠지만 이 궁벽한 곳을 찾아올 이가 과연 몇일까. 아니 이곳을 붙박이로 치대며 살던 사람들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 그나마 탄광도 문 닫으니 어쩔 수 없었겠지. 허구한날 맞닥뜨리는 숙명적 고독이나 절망에 성큼 다가서기만 하는 비극이 싫어서 떠났겠지만 만만한 세상은 없다. 우성이 형은 이제 어디서 벗어날 길 없는 자신의 절망과 마주하고 있을건가. 덜컹대며 트럭 하나가 와 섰다. 깍두기머리의 사내 하나가 내려서는 무료 구인신문을 빼내갔다. 휴일에도 문을 연 태성식당에서 한끼 떼우고 나온 사내가 낯선 이방인을 향해 야멸친 담배연기 한 모금을 후욱 뱉어냈다.
Zola Van, River To River Trail; The Hi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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