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달막한 키에 어기적거리는 걸음, 뒤뚱대며 흔들리는 몸. 우습기도 하지만 펭귄은 명색이 '남극의 신사'이다. 금방이라도 신사를 만나러 갈 것처럼 일어서다가 기침을 한다발이나 쏟아냈다. 콜록거릴 때마다 오른쪽 가슴을 송곳으로 쑤시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펭귄은 굳이 남극이 아니더라도 남반구의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나 아르헨티나,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에도 서식한다. 아델리펭귄이나 젠투펭귄과 달리 황제펭귄은 그야말로 남극 얼음 위에서 알을 낳고 키우는데 그 과정이 눈물겹다. 펭귄이 바다에 뛰어드는 것은 먹잇감을 구하기 위해서이다. 펭귄은 둔한 땅에서의 움직임과 달리 바닷속에서의 유영은 개구쟁이 빛살 같다. 허나 바다에는 펭귄을 잡아먹는 천적이 의외로 많다. 펭귄에게 바다는 먹이를 구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죽을 수도 있는 공포의 장소이다. 그러므로 펭귄 무리는 바다에 들어갈 때 대체 머뭇거린다. 이런 때 무리 속에서 한 마리가 깜깜한 무지 속으로 용감하게 뛰어들면 다른 펭귄들도 두려움을 떨치고 잇따라 뛰어들게 된다. 여기서 맨앞 두려움을 이기고 뛰어들어 무리를 이끄는 펭귄을 '퍼스트 펭귄'이라 부른다.
본의 아니게 떼밀려 앞에 서는 적이 많다. 이는 성격에도 맞지 않고, 웬간하면 사람들 앞에 나서고 싶지 않은 나를 기만하는 일이어서 귀찮아 하는 데도 부추기는 주변 사람들은 왜일까. '사회생활을 영위하려면 마땅히 적극적이어야 한다'라고 설파하면서도 말과 달리 소극적으로 똬리를 틀고 앉아있기를 좋아하는 나는, 변명도 구차하여 별 수 없이 앞에 나서게 된다. 내가 아닌 내가 움직인 셈이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내고 이제 홀로 되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지만 삶이 그런가. 하기 싫어도 되기 싫어도 앞에 나서야만 하는 때이다. 쭈볏거리면서도 검고 차가운 물을 응시하는 퍼스트 펭귄으로라도 나서야지.
David London, Now And Fore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