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어떤 소식

*garden 2015. 6. 16. 13:31




의사가 하는 말은 늘 모호하다. 흰자위가 많은 눈을 치뜨며 지켜보자는데, 좋다는 것인지 나쁘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답답한 심정에 매달려 다그치면 몇 가지 검사를 더하자고 할 게다. 아닌 줄 뻔히 알면서도 응하는데 다음에 설명을 들어도 당최 알아들을 수 없다. 이거야 원, 내 몸 어느 곳에 종양이 자리잡아 확장되다가 생을 단축시키는 것보다 먼저 속이 터져 죽을 지경이다. 그렇게 몇날 며칠이 지나고 다시 검사 결과를 통보받았다.
"이전보다 좋아졌습니다만 안심할 단계는 아니구요....."
눈길도 주지 않고, 컴퓨터 화면을 주시하고 있는 의사 입을 보았다. 얼마나 많은 말이 저렇게 허공을 맴돌았을까. 얇은 입술 안에서 쫓아나온 말이 내게 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에게 들려주려는 것인지 구별하려고 애를 썼다. 의사 입이 아래위로 움직이다가는 굳게 닫히기도 하는 모습을 무성영화의 한 장면처럼 바라보았다. 저 입 앞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이 누가 있을까. 발음도 명확치 않아. 아무래도 결과지로 확인하려면 원무과에 청구해야겠지. 내 돈 내고 검사한 결과를 왜 엉뚱한 사람들이 갖고서 장사할까. 혹시 내 몸안에서 종양이 커진다면 거기 눌려 죽을 때까지 이 과정을 반복해야 할 지 모른다. 나중에는 나 대신 다른 식구가 이 의사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를 들을지도 모르는 일. 생각하기 싫지만, 앞으로의 일을 잇다보면 어느 자리에서 엉키기만 해 막막하다.
현관을 나서는 나를 보면서도 식구들은 아무 말하지 않았다. 허긴 한두 번이어야지. 그보다 나에 대하여, 내 몸안 어딘가에서 자라나 차츰 내 삶을 뭉갤 나쁜 균에 대하여, 그 동안의 답답한 의사놀이에 대하여 일절 말을 늘어놓지 않았기에 섭섭하게 여긴다면 그거야말로 내 억지다. 핑게를 대지 않아도 어느 때 도진 역마살로 훌쩍 떠나는 걸로 알거야. 이런저런 말을 불쑥 꺼내기도 싫지만 어느새 나를 닮은 식구들도 그런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어쩌면 당분간 집안 독재자가 없음으로 인해 누릴 해방감이라도 꿈꾸는 걸까. 그렇다면 한마디 더해줘도 괜찮겠지.
"이번에는 시간이 꽤 걸릴지도 몰라."
대꾸가 없어 신발을 신다말고 고개를 드는데, 생기가 도는 눈빛이 느껴진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병원 예약도 팽개친 지 이러구러 서너 번. 쫓아가 학인하지 않으면 종내 죽을 것만 같은 부실한 장기 기능이 생각 속에서 지워진 지도 오래이다. 가뭄에 콩 나듯 통화야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그러려니 하고 지나는 걸까. 무심하기만 한 식구들이 미워지기도 한다. 배려하는 것이라 해도 이건 아냐.

소쩍새 울음소리를 새벽부터 듣는 둥 마는 둥했다. 늦은 시간까지 티브이를 틀어두었다. 일어나자 목이 뻐근하다. 몰두하지 않으면서 귓전에 '윙윙'거리는 소리를 위안이라도 삼고 싶었는지, 배게를 높이 겹친 채 잠들어서이다. 던지면 말랑말랑하게 달라붙는 아이들 찐득이 장난감처럼 누우면 가라앉았다가 깨면 생기 있게 부풀어오르던 몸이 이제는 녹슨 양철통처럼 삐걱인다. 석달째 삭월세를 들어서는 빈둥거리면서 하세월을 보내고 있지만 생각은 늘 복잡했다. 때때로 마주치는 무력감이 싫다. 사람을 떠나면 편해질까 여겼는데 이런 지경이라면 장 바닥에라도 나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창밖으로 제법 푸르른 숲을 보며 억지로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했는데, 가사를 끝까지 외울 수 없어 맥이 빠진다. 괜히 편지함에 손을 넣어 본다. 부드러운 게 묵직하게 잡혀 가슴이 덜컹했다. 융단 같은 이끼가 내 손두께 만큼 깔려 있다. 누가 여기에 이런 잡동사니를 넣어 두었을까. 그걸 꺼내려다가는 주춤 손을 거두었다. 주변이 삭막하고 메마르다고 여겼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아까부터 우체통 위에서 '피핏'거리는 새가 낯설지 않다.





 








Steve Siu, You're Still the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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