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平則鳴

초록을 지우다

*garden 2015. 6. 30. 11:25




여름 주인인 초록. 전 주인이 방을 빼기도 전에 해일처럼 밀려들어 질긴 장벽을 쳤다. 때이른 태풍 몇 개야 진작 꺾였다. 논밭이 갈라지고 호수 바닥이 드러나 흙먼지가 푸썩거렸다. 기상학자들은 가뭄 원인으로 슈퍼 엘니뇨 현상을 들었다. 모기가 기승을 부려 잠을 설치다가 희끄무레한 새벽 빛이 내리기도 전에 눈을 떠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었다. 하천변에라도 나가봐야지. 생태길에서 지난 여름 반짝이던 좀나팔꽃 등 풀꽃을 새기며 어슬렁걸음을 뗀다. 어느 집 담장 아래를 지나는데 눈치 없는 개가 요란하게 짖었다. 온 동네가 떠나갈 듯 들썩거려 순라꾼이라도 되레 피해야 했다. 운동회날 아이들이 곱게 펼쳐든 부채 같은 꽃을 달고 있는 자귀나무를 보았다. 능소화가 한움큼이나 피어 바닥이 흥건하다. 하천변은 글쎄, 게으른 공무원들 짓인가. 제초제를 뿌려서인지 무성하던 풀숲이 무참히 망가져 있다. 망연자실한 내 옆을 한 소녀가 긴머리를 날리면서 신 나게 자전거 페달을 밟고 지나쳤다.






 

 

 

 









Ludovico Einaudi, Primav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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