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 드러나는 주변 사물들. 면과 면을 구분한 선을 떠올린다. 형상이 본질인지, 공간이 본질인지 애매모호한 시간. 정형이라고 단정한 형태가 때로 어그러지다가 변하기도 하여 당황스럽다. 사실과 허구가 뭉뚱그려져 돌아간다. 어지럽다.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이 시간에 누구일까. 이슥하도록 뒤척이다가 거실 바닥에 혼자 누워 있었지. 긴장하며 실눈을 떴다. 헌데 이상하지. 어둠이야 분간할 수 있는데 정작 볼 수 없다. 눈앞이 뿌옇게 되어 들어온 이를 도무지 알 수 없다. 물기 먹은 솜처럼 바닥에 내팽개쳐진 듯 몸을 꼼짝할 수 없다. 손발 끝을 꼼지락거리며 안간힘을 써도 마찬가지. 어느덧 몸의 각 부분이 해체되어 버린 것처럼 무력하다. 상대가 조심스레 다가와 나를 빤히 보는 기척이 느껴진다. 이윽고 내게서 눈길을 거두고 혼자 집 안을 돌아다니던 이가 식탁에 무언가 올려 놓고 떨거덕거린다. 까닭없이 조급하다. 사흘 밤낮 소란스럽던 위층 사람들이 오늘이야말로 왜 이렇게 조용할까. 그러거나 말거나 여기저기를 헤집고 다니는 이를 막을려고 해도 몸에 결박이 지워진 듯 허둥거려야 하다니.
몇날 며칠을 가위에 눌리다 보면 눈을 떠도 감감했다. 밤새 아무런 일도 없었단 말인가. 새로이 맞는 아침이 신기할 지경이다. 지난하도록 어찌 그렇게 쫓고 쫓으며 허덕여야 했을까. 의식은 말짱해도 무의식이 활개치던 밤이 더 현실처럼 여겨져 진저리치는 나날이 한동안 이어졌다.
David Lanz, A Whiter Shade Of Pale
'不平則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쩌면 너도 (0) | 2015.08.19 |
---|---|
여름 눈 (0) | 2015.08.07 |
감자처럼 뒹굴고 싶어 (0) | 2015.07.06 |
초록을 지우다 (0) | 2015.06.30 |
원대리 자작나무 숲 (0) | 2015.06.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