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덜미에 흰띠 무늬를 두른 검은 고양이 한 마리. 몸을 길게 늘이고는 가슴 높이로 앞발을 받쳐든 채 숲을 주시한다. 지난 봄 새끼라도 낳았음직한 말랑말랑한 배와 부드러운 가슴살을 떨며 목으로 가르랑대는 소리를 낸다. 그 앞으로 완강하게 콘크리트 바닥을 치고 높다랗게 방책을 세워 두었다. 사람 사는 마을과 나무가 있어야 할 자리를 엄연히 구분해 놓았는데, 어느덧 경계도 소용없이 부풀어오른 숲이 넘쳐 흘렀다. 저 세상에서 이 세상으로 넘어와 늘어뜨려진 초록 이파리가 흔들린다. 이따금 들리는 숲의 아우성. 조심스레 다가서려는 찰라 나를 발견한 고양이가 문득 외면하더니 몸을 돌려 사라졌다. 고양이가 있던 자리에 대신 섰다. 생에 대한 무관심과 오연한 조금 전의 고양이 자세를 떠올리며 초록을 눈에 담았다. 여름 한가운데 있다는 것을 비로소 생각해냈다.
Phil Coulter, Song for the Mira
'不平則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사로 남아 (0) | 2015.08.23 |
---|---|
어쩌면 너도 (0) | 2015.08.19 |
내 안에 누군가 있다 (0) | 2015.07.22 |
감자처럼 뒹굴고 싶어 (0) | 2015.07.06 |
초록을 지우다 (0) | 2015.06.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