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대청마루에 올라가고 난 다음이면 제멋대로 노는 신발짝들. 말을 속에 담아두지 못하는 할머니가 이를 놓치지 않았다.
"하이고, 이놈들아. 정신머리하곤. 신발이 이게 뭐냐!"
아닌게아니라 식구가 얼마 되지 않아도 현관이 좁다하고 어질러진 신발. 어수선하여 정리하다보면 그때 할머니 꾸지람이 생각나 실소를 짓는다. 照顧脚下(조고각하)라는 말이 있는데, 발 밑을 살펴 신발을 잘 정리하라는 말이다. 즉, 신발을 살피듯 자기 자신을 살펴서 처신하라는 뜻이다. 큰절 요사체에 가보면 댓돌 위 가지런한 고무신 코가 언제나 바깥을 향하고 있다. 그게 정진하는 스님의 단정한 차림새를 대하는 것만 같다. 정신이야말로 육신에만 깃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걸친 옷이나 심지어는 신발에까지 배어 몸이 거기서 잠시 벗어나더라도 사물이 그 사람을 대신하고, 성품을 드러낸다고 믿기 때문이지 않을까.
신사에게 필수 조건은 많지만 우선 손꼽는 게 양복과 구두이다. 지향하는 건 아니지만 신사로 살게끔 교육 받아 본의 아니게 허울을 달고 살았다. 습관이 그렇게 되다보니 평상복이 어설프다. 자연스럽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양복 차림이다. 구두도 마찬가지이다. 마땅히 다른 신발이 없기도 하지만 차림이 어떠하건 간에 구두를 신고 있어야 편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두어 켤레 여분으로 마련해 두어 이것저것 골라 신기도 하지만 웬만하면 신는 구두라야 그 중에서도 하나 뿐이다. 결국 신지 않는 구두야말로 신발장에 쳐박혀 있는데, 평소 신발을 어루만지거나 간수하는 편도 아니어서 이도 나중 내버려지기 일쑤였다. 요즘은 일정하게 출근도 하지 않는 편이어서 구두를 돌볼 일도 없어 아무렇게나 꿰신고 다녔는데, 슬쩍 흙먼지가 묻어 있기라도 하면 은근히 신경이 쓰인다. 또한, 목이 긴 구두여서인지 여름 한철 답답하기도 하지만 벗어놓으면 후줄그레한 게 꼭 나를 들여다보는 것 같아 돌아서면 뒤가 켕긴다. 아무래도 새 구두를 장만해야겠지. 한동안 구두를 사지 않아 유행을 따를 건지, 취향을 따를 건지 가늠할 수 없지만, 구두를 바꾸겠다고 결정하자 한시가 급하다. 시내에 나가는 길에 백화점에라도 들르려고 했는데, 나중 무언가 들고 다니는 본새도 마땅찮다. 그래서 새 구두를 사면 버릴 셈치고 신발장에 넣어 둔 구두를 찾아 신고 나간다. 처박아 둔 구두여서인지 의외로 바닥이 딱딱하다. 보도블럭에 닿을 때마다 마찰음이 나는 것이 누군가 다른 일행과 함께 걷는 것만 같다. 허나 잠시 뒤면 너도 버릴 것이니 참아야지하며 걷다가 이왕이면 이도 닦아 신어야지 싶어 눈앞 미화원에 들렀다. 박스 안에서 구두 닦는 이는 늙수그레하여 손을 부지런히 움직이면서도 보기와는 달리 싹싹하게 말을 건넨다.
"아참, 좋은 구두입니다."
"그런가요?"
"네, 요즘엔 장인이 만든 이런 신발이 나오지 않아요."
"얼마나 더 신을 수 있을까 염려하던 중인데."
"버릴 거면 지금 당장 버려도 되고, 신으실 거면 지구 반 바퀴라도 끄덕없겠습니다."
"그래요? 한 바퀴 이상은 돌아야 하는데."
"그럴려면 신발 안 깔창을 새로 넣어야겠는데요."
"그렇게 해주세요."
눈길도 주지 않고 입만 열던 노인네가 구두약 범벅인 손을 별안간 멈추고 구두 앞뒤를 견준다. 그리고는 무릎 앞 상자를 뒤적여, 품질이 좋다는 가죽 깔창을 마주쳐 두드리며 신 나 움직인다. 헤지고 딱딱해져 버릴 뻔한 구두가 다시 태어났다. 백화점에 들르는 대신 넉넉한 시간에 강남 예식장에 들어갔다. 화촉을 밝히는 안주인의 떨리는 마르고 앙상한 손과 달리 신부를 데리고 들어오는 바깥주인의 반짝거리는 구두코가 눈에 띈다. 웨딩 마치에 맞춰 구두가 신부를 데리고 나아간다. 신랑의 투박한 구두가 씩씩한 걸음걸이로 마중나왔다. 멈칫하면서도 엇갈리는 자세를 보며 사람들이 웃었다. 주변 사람이 눈치 채지 않게 나도 바짓단에 구두코를 문질렀다. 이 구두로 아프리카에 간다면 신발을 신지 않는 말리 밤바라족들은 이상스럽게 쳐다볼지 모른다. 하지만 신사들이 활개치는 세상이라면 어디든지 거뜬히 돌아다녀도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의지가지 없는 세상에서 오직 내 고단한 발을 감싸 비 오거나 낙엽이 쌓이거나 얼음장으로 덮인 겨울날을 가리지 않고 굳건하게 나아갈 걸음과 구두에 새삼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Berlin Philharmonic-Beatles, Hey Jude